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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소포에서 메타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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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11 23:21:55 수정 : 2022-05-11 23: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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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센터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는 여성들이 있다. 몇 년 전 조금만 더 공부하고 가라던 우리의 만류에도 성급하게 일터로 향했던 결혼이민 여성들이다. 경제적 생존을 선택한 그들을 더 적극적으로 말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국 사람과 일하니 생활언어는 늘 거라 기대했다.

그녀들의 취업은 한국어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협력해서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기계와 이루어지는 단조로운 분업이기 때문이다. 문서를 주고받으며 함께하는 일이라면 어휘가 늘었을 것이다. 동료들과 맞벌이의 고단함과 내 손으로 돈 버는 보람을 나누는 환경이었다면 말이 늘었을 것이다. 대화 없이 생산만 하는 기계 앞에서 나이가 늘었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주말만이라도 다시 공부하려 마음먹은 상황은 비슷하다. 아이들의 어휘는 늘어갔고 유창해졌는데 엄마의 언어는 단순했고 답답했다. 학교에서 보내는 통신문은 어려웠고 아이들의 공부는 자율에 맡겨야 했다. 불안한 마음에 열심히 돈 벌어서 학원비는 내지만 아이가 클수록 교감은 허술해졌고 위계마저 흔들렸다. 남편과 정해진 역할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지키고 있으나 속 깊은 소통을 바라는 건 그저 바람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상황은 어떨까? 국내 출생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일상언어에 문제가 없으니 외모로 드러나지 않는 한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정서 행동의 문제를 보이지 않는 한 주목받지 않는다. 차별받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차별받지 않으나 조용히 묻어가는 건 아닌지 우려됐다. 어떻게 해야 이 조용한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궁리를 했다.

3, 4월에 초등생 자녀를 둔 가정을 대상으로 아이들은 지능, 정서, 진로 검사를 하고 부모들은 양육 태도를 검사하는 ‘마음자람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엄마들의 관심사였는지 20여 가정이 참가했다. 지능이 기준치보다 낮게 나온 아이들이 있었다. 언어 영역이 많이 낮았다. 집에서는 엄마의 한국어에 옆구리를 찔러가며 눈치를 주던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묻어가고 있었나 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꿈에도 그리던 네루다로부터 편지와 소포를 받았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메타포가 담긴 편지를 먼저 뜯자고 했고 그의 장모는 사람 사는 데는 소포가 더 먼저라 했다. 마음의 가치를 알고 있는 마리오가 옳다. 생활을 통찰하는 장모 또한 옳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마음을 전하는 말 없이 살 수 없고 돈이 없어도 살 수 없다. 이제 와서 그녀들에게 왜 소포를 먼저 뜯었냐고 나무라는 건 의미 없다. 그 덕에 소리 소문도 없이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다 같이 소포를 넘어 메타포까지 가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녀들의 더딘 길에 따라가며 박수를 보낸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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