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소주성 등 ‘反지성 산물’ 간주
합리적 野 소장파와 소통·연대 부각
‘공급망 동맹’ 강화로 과학·기술 혁신
전쟁 회피 아닌 지속가능한 평화 추구
국제사회와 北 주민 자유·인권 연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사에서 시대적 소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강조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윤석열정부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지성주의는 합리주의·지성주의로,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양극화는 과학기술 혁신에 기초한 빠른 성장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해서는 핵무장에 단호히 반대하면서도, ‘선비핵화·후경제지원’이라는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문은 열어놓겠다고 했다.
‘상식·합리’ 기초한 협치 강조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며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에 기초한 의견 조정과 타협을 강조했다. 상식과 합리, 사실에 기초한 토론이 아닌 진영논리와 각자의 확증편향에 기댄 공방과 적대적 공생이 ‘조국 사태’를 계기로 터져 나온 진영 갈등을 심화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일자리·탈원전 정책, 소득주도성장 등 현실이 아닌 이념에 기초한 정책도 ‘반지성주의’의 산물로 간주된다. 윤 대통령은 국정과제에서도 정치 부문에서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를 국정 목표로 내세우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이념과 진영 중심의 대립으로 제 역할을 못 했고, 국민은 분열된 정치권이 청구하는 시대적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의 합리주의·지성주의에 기초한 소통은 ‘이념이 아닌 국민 상식에 기반을 둔 국정운영,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치의 원칙’이라는 국정운영의 원칙과 맞닿는다. 더불어민주당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의석수를 내세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지지층과 이념에 경도된 정책을 굽히지 않을 경우 윤 대통령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윤 대통령의 자유에 대한 발언은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언급했던 ‘다수의 횡포’나 프랑스의 사상가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꼬집었던 ‘대중 여론의 독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전언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의도 정치권에 대한 우려를 내비친 것 아니냐고 관측하기도 한다.
대신 윤 대통령은 합리적인 야권 소장파와의 소통과 연대는 언제든지 열려있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선거기간 줄곧 “민주당의 양식 있는 정치인과 멋진 협치를 통해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겠다”며 이재명 상임고문 측과 강성 모임인 ‘처럼회’가 아닌 민주당 내 소장파를 향해 일관된 협치의 메시지를 보냈다.
개인·기업의 ‘자율·창의’ 보장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진단한 윤 대통령은 빠른 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의 혁신이 양극화 해소는 물론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개인의 자유도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낳는다는 윤 대통령의 구상은 ‘민간이 이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의 국정 목표로 연결된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개인과 기업의 자율과 창의 보장은 규제 혁신 정책으로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국정과제에서 ‘규제시스템 혁신을 통한 경제 활력 제고’를 지적하면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혁신전략회의’와 민간이 주도하는 ‘규제혁신추진단’을 통해 신산업 육성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완화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진보를 위한 해외 국가와 연대는 글로벌 공급망 동맹 강화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추진 등의 구체적인 외교·통상 정책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2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의제뿐만 아니라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 협력 강화와 한·미 원전동맹 등의 경제·기술 분야 협력도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北 비핵화 ‘억지·관여’ 병행
윤 대통령은 굴종적 대북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겨냥한 듯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 기간 강조한 국방력 강화에 기초한 대북 확장억제 능력 강화보다는 ‘지속가능한 평화’라고 순화된 표현을 썼지만 ‘북한 비핵화’를 명시하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핵 폐기라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한다”고 적시하면서도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며 ‘억지와 관여’를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남북관계 정상화’ 국정과제에서도 기술된 ‘남북 경제협력 로드맵’을 골자로 비핵화와 유기적으로 연계된 경제협력 비전을 제시한다는 구상과 맞닿는다. 과거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비핵·개방 3000’을 연상케 하는 구상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 경제발전 지원방안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북한의 핵실험이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방점을 둔 ‘당근’보다는 ‘한국형 3축체계 강화’와 한국형 아이언 돔의 조기 전력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연기,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의 ‘채찍’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또 글로벌 경제 10위권 국가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도 강조했다. 그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규범을 적극 지지하고 수호하는 데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며 “세계 시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윤 정부가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이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참여 등 국내외 외교·안보 이슈에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정 부분 보폭을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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