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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도 채식 권리 보장해야”… 교정시설에 ‘비건 식단’ 주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 2022-05-11 06:00:00 수정 : 2022-05-11 07: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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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법무부에 의견 표명

육류 빼고 먹다 영양실조 수용자
“채식주의자 신념 침해당해” 진정

“건강권 등 기본권 존중… 법 개정을”
2021년 학교급식에도 같은 의견 내

軍선 3년 전 비건 식단 규정 마련
유럽 등 수용자 신념 인정 추세

선천적인 유당불내증(유제품을 먹으면 속이 불편해지는 증상)을 가진 A씨는 어린 시절부터 채식주의자로 살아왔다.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한 채식은 그에게 신념이기도 했다. 그런 A씨는 2020년 4월 교정시설에 입소하면서 채식을 이어가는 것이 어려워졌다. A씨는 우유와 동물성식품을 피해 야채나 생김, 콩조림 등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영양실조로 체력이 떨어지면서 탈모 증세까지 겪었지만, ‘현미쌀을 구매하게 해달라’는 A씨의 요청을 교정시설은 거부했다. 보다 못한 A씨 지인은 ‘A씨가 채식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침해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국가인권위는 10일 해당 진정과 관련해 “채식주의 신념을 가진 수용자가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채식주의 식단을 마련하고 관련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채식주의를 개인의 기본권 영역에서 해석한 것으로, 추후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에 따르면 해당 교정시설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특정 수용자의 요구대로 물품이나 식단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교정시설 측은 A씨의 고충을 해소시켜주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해명했다. 실제 A씨의 과일 구매 횟수를 주 2회에서 3회로 늘려주고, 원하는 채식 반찬의 양을 늘려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는 교정시설의 이런 노력을 인정해 진정을 기각했다.

다만 인권위는 교정시설이란 공간이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특성을 가졌더라도, 채식주의 신념을 가진 수용자의 기본권을 존중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식생활의 기본으로 하는 수용자의 경우, 그 신념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삶이 피폐해지고 건강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우리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해외 판례를 들어 채식주의 신념에 대한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13년 수용자의 채식주의를 일종의 종교적 자유의 표현으로 봤다. 더 나아가 교정시설이 수용자의 종교적 신념에 필요한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종교적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고 판시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의 기준은 없지만, 캘리포니아주가 2018년 교정시설을 비롯해 주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식물성 식단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해당 법은 ‘건강이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양가 풍부한 음식에 접근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채식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학교급식에서 채식주의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국방부 또한 2019년 ‘채식을 하는 장병에게 대체품목을 매 끼니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개별 기관 차원의 움직임에서 나아가 채식주의를 보장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식단 선택권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해당하는 만큼, 어떤 시설에 있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며 “교정 시설은 물론 병원이나 학교 등에서도 채식주의에 관한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구성·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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