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법, 치욕스러운 사법 역사”
김관정 수원고검장, 채널A 수사일지 공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수사 개입 정황 담겨

문재인 정권 마지막 날인 9일 검찰 고위 간부들이 낸 메시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조재연 부산고검장은 정권 말기에 처리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해 “냉정한 국민의 평가가 있을 것”이라고 비판하며 재차 사의를 표명했다. 반면 친정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관정 수원고검장은 대검 형사부장 시절 작성한 채널A 사건 관련 수사일지를 공개하며 ‘셀프 명예회복’에 나섰다.
◆“피 토하는 심정…사직은 최소한의 예의”
지난달 22일 검찰 지휘부 총사퇴 당시 사표를 제출한 조 고검장은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재차 사직의 뜻을 밝혔다. 청와대가 지난 3일 김오수 전 검찰총장의 사표 외에 고검장 6명의 사표를 반려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조 고검장은 “국민 세금으로 살아온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오직 사직하는 것만이 국민과 검찰 구성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이제 검찰을 떠나고자 한다”고 적었다.
조 고검장은 검수완박법에 대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며, 사법 역사에 있어 치욕스러운 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모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법을 막고자 했던 이유는 시행될 경우 엄청난 혼란과 국민 불편을 초래하고 범죄자만 이득을 보며 그 피해는 선량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며 “(검수완박법에 대해) 국민들의 냉정하고 현명한 평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예고했다.

조 고검장은 검찰을 향한 당부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관심이 ‘검수완박법’ 통과에 대한 분노에만 그친다면 언제든 지금 같은 사태는 또 반복될 것”이라며 “정치세력과 검찰은 필연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이런 사태가 온 근본적인 원인은 국민들께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다시는 국민에게서 따가운 질책과 오해를 받지 않도록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킬 방안에 대해서도 함께 지혜를 모아달라”고 덧붙였다.
◆김관정 “윤석열, 이동재 압색 당일 통보에 격노”
이른바 ‘추미애 사단’으로 불리며 친정권 검사로 분류된 김 고검장은 이날 이프로스에 채널A 사건 관련 수사일지를 공개했다. 이날 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사건이 재차 거론될 것에 대비해서다. 지난달 검찰이 수사 2년여 만에 한 후보자의 채널A 사건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 앞서 김 고검장은 이성윤 서울고검장·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 등과 함께 한 후보자를 공격한 바 있다.
김 고검장은 자신이 공개한 일지의 객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20년 1월 대검 형사부장으로 부임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검이 수사를 담당하게 되면서 관여를 하게 됐다”며 “당시 (중앙지검) 수사팀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견해 차이가 있으면서 갈등이 발생한 상황이었고, 중간 전달자 입장에서 일지를 작성하게 됐다”고 했다.
김 고검장은 “며칠 전 박영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가 (한 후보자)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하기에 고민 끝에 공개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고검장은 채널A 사건 수사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수사 방해’ 의혹을 주장한 바 있는데, 당시 형사1과장이었던 박 부장검사는 김 고검장의 대척점에 서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해왔다. 김 고검장이 박 부장검사의 청문회 증언을 무력화하기 위해 일지를 공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 고검장이 공개한 ‘채널A 관련 사건 일지’에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으로서 사건 수사에 개입한 정황이 담겼다.
일지에 따르면 당시 채널A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 회부를 결정했지만, 윤 당선인이 별도 전문수사자문단(자문단) 구성을 강행한 것으로 나온다. 윤 당선인은 대검 간부들에게 자문단 개최 여부에 대한 투표를 지시했다가, 자문단 위원을 직접 선정하겠다고 나섰다. 대검 간부들은 자문단이 심의위와 중복된다며 자문단 연기를 요청했지만, 윤 당선인은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 “자꾸 말하면 나 보고 나가라는 말”이라며 일선 의견을 차단했다.
또 김 고검장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사전 보고 없이 당일 대검에 통보하자, 윤 당선인이 격노하면서 ‘압수수색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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