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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전락한 거리두기 가림막… 재활용 난관 [심층기획-포스트 코로나 ‘플라스틱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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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10 08:00:00 수정 : 2022-05-10 0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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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 아이템에서 골칫덩이로

“개당 2만3000원 들여 맞췄는데…”
식당·사무실·공공기관 처리 고민
아크릴·페트 등 재질분류 어려움도

‘코로나 쓰레기’ 대책 시급

대다수는 폐기물로 전락해 소각·매립
2020년 폐합성수지 생활폐기물 116만t
정부 “마스크·가림막 재활용 방안 고민”

“코로나19도 끝났는데 플라스틱 가림막을 어디에 쓰겠어요?”

 

서울 중랑구에서 한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43)씨는 지난 2일 식당에 설치한 ‘플라스틱 가림막’ 15개를 걷어냈다. 단체손님 사이에서 식탁마다 설치된 가림막이 불편하다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초 개당 2만3000원씩 주고 고정형 가림막을 설치했는데 금방 낡아서 재활용할 곳도 없다”며 “다른 식당들도 단체손님이 늘어나며 가림막을 걷어내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근 플라스틱 분류함에는 버려진 가림막이 쌓여있었다.

 

일반 음식점뿐이 아니다. 공공기관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서울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시청 본관 구내식당에 설치한 플라스틱 가림막 119개를 약 2년 만에 떼어냈다. 떼어낸 플라스틱 가림막들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 일단 창고에 보관돼 있지만, 서울시는 향후 처리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라 가림막을 걷어내기는 했는데, 이를 폐기할지 재활용 용도로 보관상태를 유지해야 할지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인원제한이 풀리면서 식당, 사무실, 공공기관 등에 설치됐던 플라스틱 투명 가림막이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투명하고 깨끗한 플라스틱이니 재활용이 쉬울 법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외형만으로 가림막의 재질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면 먼저 재질별로 분류돼야 한다. 소비자들이 가림막을 플라스틱류로 분리배출해도, 선별장이나 재활용 업체에서는 폐기할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코로나 플라스틱 대책’이 세워지지 않으면 코로나19 확산으로 특수를 누린 플라스틱 가림막이 대량 쓰레기로 전락할 처지인 셈이다.

서울 마포구 성원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관계자들이 개학을 앞두고 비말 차단 가림막 등을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림막 세계적 ‘품귀현상’… 국내도 매출 급증

 

9일 플라스틱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 플라스틱 가림막 생산량은 약 30%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스틱 가림막은 아크릴, PC(폴리카보네이트), 페트(PET)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다. 단단해 파손 위험이 작은 PC 재질 투명 가림막은 어린이집, 학교, 관공서 위주로 판매됐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크릴 소재 투명 가림막은 식당이나 민간업체를 중심으로 대량 공급됐다.

 

국내 플라스틱 가림막 시장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한 업체는 “투명 플라스틱판은 기존에 산업체에서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코로나19 이후 생산량이 30% 늘어난 것은 업계에 다시 없을 초유의 성장”이라며 “2020년과 2021년 연간 1000t 규모로 플라스틱 칸막이를 생산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가림막이 코로나19 시대 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아크릴판은 세계적으로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수요가 급증했고, 그만큼 대량 공급됐다. 코트라(KOTRA)의 아크릴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미국 내 아크릴판 제품 관련 매출은 최대 30배까지 급증했다. 미국의 아크릴판 제조기업 ‘플라스코라이트’는 폭발적인 수요에 미국 내 10개 공장을 24시간 가동해 일주일에 300만개의 안면보호구와 20만장의 아크릴판을 생산했다. 한국은 미국 아크릴판의 제1수입국이었다. 한국은 2020년 1∼4월 기준 2221만7000달러(약 283억원) 규모의 미국산 아크릴판을 수입했다.

◆분류부터 난관… 재활용 못하면 소각·매립

 

대량 설치된 플라스틱 가림막은 ‘포스트 코로나’가 현실화하면서 고스란히 폐기물로 쏟아질 처지에 놓였다. 플라스틱은 통상 물리적 방식으로 재활용된다. 같은 소재별로 모아 세척해서 잘게 부순 후 재생 플라스틱 소재로 활용한다. 물리적 재활용을 위해서는 소재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첫 단추다. 그러나 투명 가림막은 생산할 때 재질 표시를 하지 않아, 소재별 분류부터 쉽지 않다.

 

플라스틱을 분리배출할 때는 대개 재활용 선별장에서 소재와 쓰임새에 따라 나눈다. 서울 각 자치구·선별장에 따르면 현재 식당에서 버리는 가림막 대부분은 재활용 선별장에서 폐기물로 분류돼 소각, 매립되고 있다. 일부 가림막은 다른 플라스틱 소재가 섞여 있거나 투명 코팅이 돼 재활용이 쉽지 않다. 서울 한 자치구 관계자는 “같은 가림막이라도 소재가 다양하고 이를 파악하기 힘들어 선별장에 들어오면 거의 폐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자치구 관계자는 “가림막을 다른 폐플라스틱과 함께 재활용 업체로 보내도 그중 20%가량은 여러 이유로 그대로 폐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업사이클링(새활용 : 자원 재활용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 업체 터치포굿의 박미현 대표는 “전국 소규모 선별장에서는 외형만 보고 재질을 파악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선별장들에 따르면 아직 버려지는 가림막의 양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선별장들은 코로나19 이후 넘쳐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만으로도 분주한 상황이라, 플라스틱 가림막이 대거 추가돼도 세밀한 분류 작업이 이뤄지기는 힘든 환경이다.

 

서울 용산구에 소재한 재활용선별장 직원은 “한 달에 1400t(톤)의 폐기물이 들어오는데 코로나19 이후 배달음식이 많아지면서 플라스틱 비중이 10% 정도 늘어나 직원들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상황”이라며 “이들 폐기물들 가운데 절반은 단가가 낮거나 이물질 등 분류가 힘들어 자체 폐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재별 분류라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페트, PC, 아크릴 자체는 물리적 재활용이 가능하다. 페트는 이미 다수 대기업이 재활용하고 있으며, PC도 롯데케미칼 같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을 만큼 재활용 시장이 활성화됐다. 재활용 PC 소재는 충전기 어댑터를 만드는 데 많이 쓰인다. 최근 삼성·LG 등 가전업체들이 재생 원료 사용을 중시하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정부 “코로나 폐기물 재활용 고심 중”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폐기물 재활용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에 비해 2020년 연평균 플라스틱 등 폐합성수지 생활폐기물은 95만t에서 116만t으로 22% 증가했다.

울산시 북구 동천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시험장 책상 위에 반투명 아크릴 재질의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는 지난달부터 한국플라스틱단일재질협회와 코로나19 확산으로 급증한 플라스틱 폐기물 수거체계를 논의하고 있다. 방역체계가 모두 풀릴 때에 대비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떻게 배출하고 재질을 분류할지 지방자치단체와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2020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시 사용한 아크릴 소재 가림막 재활용은 좋은 선례다. 당시 정부는 직접 아크릴 가림막 회수에 참여했다. 재질협회와 유통사, 환경부가 지역별로 수거체계를 구축했다. 상당수 학교에서 가림막을 계속 사용해 수거되지 않은 물량도 있었으나, 회수 물량 대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크릴 재질 가림막은 국내에 재활용 업체가 있다”며 “다만 재활용 전에 파쇄나 분쇄 시설이 부족해 녹일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만 해결하면 재활용이 충분히 가능하고 수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감염 가능성으로 그동안 폐기해 온 마스크도 재활용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마스크 필터는 주로 PP(폴리프로필렌), 즉 플라스틱 섬유로 만들어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3월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에 생산된 마스크 수는 1억145만개에 달했다. 마스크 1개가 3.5g이라고 가정하면 매주 355t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배출된 셈이다.

 

환경부는 코로나19 확산이 점차 주춤해지자 하루 평균 1500만개 이상 생산되고 있는 마스크의 재활용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마스크는 주 재질이 PP라서 재활용이 용이하다는 의견이 있다”며 “안전성 문제만 해결되면 분리배출 항목에 넣는 식으로 재활용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승진·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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