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선 “피고인 반대신문권 제한”
대법도 ‘증인 신문 필요성’ 인정

대법원이 초등학생인 의붓딸 친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의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영상진술도 증거로 인정하는 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여파다. 피해자는 사건 2년 만에 다시 피해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미만 미성년자 위계등 간음) 등 혐의를 받는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12세이던 B양을 상대로 유사성행위와 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성폭력 범죄로 두 차례의 징역형 처벌을 받은 전과자다.
원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A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B양의 피해사실 진술을 녹화한 영상물이 증거로 제출됐고, 재판부는 진술 신빙성을 인정했다. 성폭력범죄처벌법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하게 한다. 또 같은 법 제30조6항은 그 영상물이 법정에서 진술 과정에 함께 있었던 신뢰관계인이나 진술조력인의 사실 확인을 받으면 증거로 쓸 수 있게 했다. 피해자가 피고인을 직접 법정에서 마주함에 따른 2차 피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해당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헌재는 “형사 절차에서 미성년 피해자 보호 규정을 마련할 때는 피고인에게 공격 방어 방법을 적절히 보장하면서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조화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이 사건은 성폭력처벌법 제30조6항과 같은 내용을 규정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6조6항이 적용됐는데, 이 조항도 마찬가지로 위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청소년성보호법의 조항이 위헌인지를 따지거나 그 적용에 따른 위헌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증인으로 소환하여 진술을 듣고 피고인에게 반대신문권을 행사할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 등에 관해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 위헌 결정 당시 법조계·시민단체에서는 “피해자 보호권을 후퇴시키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성년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피고인을 마주한 채 피해 사실을 반복 진술하고, 신빙성을 무너뜨리려는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을 받으며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11일부터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영상 증인신문’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법정 출석 대신 해바라기센터에서 비디오 중계장치 등을 이용해 증인신문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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