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과학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그럼에도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에서 존재해온, 예지를 논리적으로 연구하듯이 탐구해보고 싶었다. 분명히 존재할 것 같은 예지를 데이터로 모아보면 무언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으로 모았을 때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하고 소설가 우다영은 궁금했다.
더구나 이전에 쓰던 방식과 전혀 다른 형식의 단편소설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도 창작하지 않았던가. 그는 이 작품에서 ‘오늘’과 ‘어제와 내일’이라는 인도어를 합성한 ‘아즈깔’이라는 풀은 영혼이 있어서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다른 풀들과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고 묘사했다. ‘각성한’ 사람들은 현생을 포함해 인류가 겪어온 모든 생을, 심지어 아직 겪어 본 적이 없는 미래의 생까지도 기억해낼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두 번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에서도 이 세계 너머의 저 세계라는 순환적 세계관, 구조 틀을 암시나 징조로 담기도 했고.
“예지나 예언 같은 처음 어떤 생각과 실제 결과 사이나 관계가 무엇일지를 떠올려보고 싶었죠. 신화에서 보면 어떤 예언 때문에 실제로 일들이 일어나게 되잖아요. 그런 것을 과학적인 언어나 논리로 접근하면 어떻게 될까, 예지가 미래에 대해 미래가 다시 예지에 대한 영향 관계를 다뤄보고 싶었던 것이죠.”
출판사 허블이 야심적으로 시작한 SF시리즈 ‘초월’의 첫 작품집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에 포함된 우다영 작가의 중편 SF 「긴 예지」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원고매수 250매가 넘는 이야기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는 29세 여성 효주가 모바일 게임 ‘볼볼볼’을 잘 하는 솔이의 베이비시터가 되면서 시작된다. 효주는 솔이에 이어 책임 연구원 도경의 초대로 예지를 데이터화하고 구체화하는 예지 인공지능 ‘레마’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예지자의 데이터를 주입해도 레마의 예지 능력은 생기지 않고 반대 진영의 방해까지 겹치면서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만다. 효주는 ‘찢어진 책 이론’에 따라 미래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과거 또한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수십만 번의 가상 삶을 살게 되는데. 그녀는 과연 미래를 보고 실현할 수 있는 예지를 얻을 수 있을까.

“인간은 신을 돌보고 신은 인간에게 자애를 터득했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 신이 깃들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신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깃들었다. 신은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암시이며, 기나긴 예지이며, 곧 세상이었다.”(95쪽)
2014년 등단한 이래 주로 순문학 계열의 소설을 써온 우다영 작가는 왜 SF 소설을 쓰지 않으면 안됐을까. 그의 소설 세계는 앞으로 어디로 향해 나아갈 것인가. 우 작가를 기자간담회가 열린 지난달 5일 서울 정동 한식당에서 만났다. 그는 나무들이 촘촘하게 들어찬 것 같은, 경쾌하고도 풍성한 이야기의 숲으로 기자를 인도해 놓고선 도대체 빼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품의 문체나 문장에 순문학적 면모도 살짝 보이는 것 같다.
“구상이나 시작, 도입부의 고민이 많았다. 앞으로 더 연구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우리가 아는 그냥 보통 세계에서 새로운 것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SF 구성이다. 앞으로 쓸 SF에선 어떤 달라진 세계에서 능청스럽게 시작하는 소설도 쓸 예정이다.(웃음)”
―평소 SF를 좋아했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비롯해 판타지는 좋아했지만, SF소설은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SF적 요소가 영화나 드라마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콘텐츠에 많이 퍼져있다.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 그때는 SF 붐이 불기 전이었는데, 미국인 과학소설 작가 테드 창(Ted Chiang)을 좋아했다. 테드 창을 보면서 건조한 사실의 나열도 문학과 같은 방식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느꼈고, 내가 이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두 번째 소설집을 묶은 다음에 SF적 작품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을 쓰게 됐다.”

―순문학을 쓰다가 이번에 SF를 썼는데, 무엇이 가장 다르거나 어려웠는지.
“소설의 목적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 같다. 솔직히 이전에 쓰던 방식의 글쓰기가 아니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되게 혼란스러웠다. 단편 「노크」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누가 덤프트럭에 치였는지를 미묘하게 해서 어떤 게 진실인지 모르게 뒤섞거나 가능성을 중첩되게 그려내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선 오히려 구조를 정면으로 가져와서 구체화해야 되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됐다. 그러다 보니까 가장 숨겨야 될 것들을 드러내고, 드러내야 될 것들을 다 없애야 했다. 왜 필요한지를 많이 생각한 뒤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부문을 많이 들어내야 했다. 이 작업이 굉장히 길고 힘들었다. 이전 저의 소설들에 많이 붙었던 수식어 가운데 하나가 신비나 몽환 등이었는데, 이번 SF소설에선 그게 불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보여줘서(독자가 그 세계에) 도달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다른 근육을 쓰는 글쓰기였다. 처음이이서 불안했고, 좀 헐벗은 기분으로 쓰게 돼서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순문학은 어떤 여백이나 이야기의 분위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었다면, SF소설의 경우 세상과 구조를 가져와서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했다. 골조를 말해야 하니까 이게 맞나 싶기도 했다.”
―SF작품을 써보니, 순문학과 SF 중 어떤 것이 더 매력적인가.
“순문학의 어떤 부분, SF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거지, 완전히 이쪽이다 저쪽이다 하는 건 아니다. SF에도 과학소설이 있고 판타지가 있는 것처럼, 순문학 역시 많은 세부 분야로 나뉘어 있다. 작가로서 그냥 SF나 순문학 창작을 할 뿐인데, 오랜 세월 이 둘을 너무 물과 기름처럼 나눠 보는 게 재미있다. SF를 쓰고 싶었고, 이 화법으로 쓰고 싶은 게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우려와 불안, 공포가 있었는데, 겁을 내는 편이 아니다. 서로의 장르에 대해 알 때 더 재미있다. 알아야 돼, 라고 폭력적으로 요구할 자격이 없지만, 햇살을 뿌려서 너희도 해봐, 하고 유혹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말야, 일단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쓰고, 흥미와 갈등을 촉발시키기 위해서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을 죽이고.... 고교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했고 대산청소년문학상까지 받은 중학 동창은 문예창작과 지원을 위한 창작 실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고 묻는 수험생 우다영에게 급한 대로 팁 몇 가지를 가르쳐 줬다.
그는 대학 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을 망친 탓에 나름 자신이 있던 논술 글쓰기를 바탕으로 문예창작과를 준비해야 했다. 문창과 합격의 관건은 제재나 주제가 주어지고 한 시간 반 동안 소설을 쓰는 실기 시험. 다행히 실기를 잘 치를 수 있었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 문예창작과 생활은 소설가 우다영의 문학 원점이 됐다.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난 우다영은 2014년 단편 「셋」으로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문학의 숲에, 작가의 길에 들어선 것인지.
“어릴 적에는 온갖 종류의 동화를 읽었다. 하지만 정작 중고등학교 정규 수업이 본격화하자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솔직히 고등학교 때에는 소설을 비롯해 문학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런데 수능을 망해서 갑자기 문예창작과를 가게 됐는데, 거기에서 문학 공부나 만난 친구들이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면서도 처음 작가의 길을 생각하진 못했다. 친구나 선후배가 재학 중 등단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저도 문예지에 응모를 했고,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게 됐다. 직업으로서 소설가로 살게 되면서 문학을 진지하게 공부하게 됐다.”
그는 등단 이후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등을, 중편 소설 『북해에서』를 펴냈다.
―그간 쓴 작품이나 작품 경향을 설명해 준다면.
“첫 번째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은 왜 이상하고 우연한 일들이 일어날까에 대한 생각이 글쓰기의 가장 주요 동력이 된 작품집이다. 예를 들면, 왜 우리가 헤어졌을까, 왜 나는 살고 저 사람은 죽었을까 등에서 시작해서 나아가는 세계를 그린, 어떤 우연한 일들이 세계의 징조로 펼쳐져 있는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에선 징조로 펼쳐진 세계에서 한 발짝 밖으로 더 나가서 시공간과 가능성들을 뒤섞어 버리는 작업을 많이 했다. 중편 『북해에서』의 경우 플롯 구조를 빼내서 계속 새로운 액자 소설로 들어가는 방식의 작품이다. 즉, 첫 번째 인물이 어떤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 속의 화자가 다시 액자 속으로 들어가고, 그 이야기 안에서 또다시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플롯 구조이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처음에는 제가 지금 하고 싶고, 읽고 싶은 이야기를 썼던 것 같다. 요즘에는 어떤 상태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한다. 존재나 생명이란 어떤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계속 살아 움직이지만 특성이 유지되는, 변하지만 항상성이 유지되는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이다. 소설을 쓰고, 그 소설 때문에 스스로 좀 변하는 한편 다음 소설을 쓰고 싶은 질문이 생기고, 계속 쓰고 싶은, 멈추지 않는 어떤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계속 멈추지 않는 상태였으면 좋겠다.”
―SF 작가로서 포부도 말해달라.
“저의 SF 작품을 읽고 나면, 제 소설을 읽었거나 처음 읽는 분들도, 아 이래서 우다영이 이것을 쓸 필요가 있다고 느꼈구나, 하고 이해하고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갑자기 다른 걸 한다고 생각하진 않다. 계속 차이를 주고 변주를 하는데도 이 작가가 이것을 하는 구나, 하는 어떤 관통하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최근 작업실을 마련했다고 들었는데.
“가족과 함께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최근 집 근처에 조그만 작업실을 구해서 출퇴근하며 글을 쓰고 있다. 공간을 잘 가리지도 않고, 예민하지도 않은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등단한 후 8년 넘게 쉬지 않고 밀어붙여서 너무 글만 써왔는데, 최근 힘들어 글이 잘 안 될 것 같아서 충동적으로 구했다. 딱 글 쓰고, 간단히 먹고, 창밖 내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강의나 북 토크를 비롯한 행사는 많이 줄이고 소설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등단 이후 8년간 순문학 계열의 소설을 주로 써온 작가가 SF 소설의 영역으로 뛰어든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불안과 우려, 공포도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겁이나 후퇴 같은 건 그의 편이 아니었다고, 인터뷰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SF소설을 쓰면서 그는 주변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단 한번 읽어봐!”
인터뷰 끝자락에 혹시 묻지 않는 대답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고 묻자, 이 젊고 패기 있는 작가는 잠시 기다려달라며 숨을 한 번 고른 뒤 말문을 다시 열었다. 작품을 불안해하며 읽을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럼에도 작가가 무엇을 열심히 하고 싶구나, 이야기를 이렇게 전달하고도 싶었구나, 라고 그냥 좀 열린 마음으로 읽어봐 주시면 고맙겠다고.
자신이 소설이 새로운 질문을 낳고, 다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새로운 소설을 쓰면서 계속 혁신하고 싶다는 우다영 작가. 소설과 문학의 숲에 계속, 끝까지 머물고 싶다는 작가의 용기 있는 SF 도전에 문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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