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안 들어 조망권 피해 호소 빈번
법적으로는 건축주에 전혀 문제없어
“승인 단계서 주거환경 침해 고려를”

“일조권 피해를 호소했던 주민들이 건축주에게 다소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경기도의 한 오피스텔 주민 A씨는 지난 3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몇몇이 건축주를 고소하겠다고 목소리 냈던 일을 기억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36가구가 사는 이 10층짜리 오피스텔과 불과 2m 거리를 두고 같은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 동쪽을 가로막게 되자 주민 일부가 수년 전 일조·조망권 피해를 주장하면서 인접 건물 건축주를 고소하려 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건축주는 시에서 적법하게 허가받았다며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었다.
이 오피스텔은 동서남북 방향으로 모두 창이 나 있는데, 사건이 불거진 뒤 경과를 물어본 기자에게 A씨는 구체적인 보상 액수는 잘 알지 못한다면서 이렇게 귀띔했다.
◆상업지역 내 ‘다닥다닥’ 붙은 오피스텔… 오후 2시에도 채광 기대 못 해
토지이용 계획 등의 정보를 알 수 있는 국토교통부 ‘토지e음’에서 확인한 결과, 이 오피스텔이 들어선 곳과 그 주변은 일반상업지역이다. 현행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은 상업이나 그 밖의 업무편익 증진을 위해 필요한 지역을 일반상업지역으로 규정한다. 건축법은 전용주거지역과 일반주거지역에서 인접 건물의 일조권을 고려하도록 규정하지만, 상업지역은 예외다. 인근 건물 공사 등으로 거주민의 일조권이나 조망권 침해 호소가 있어도 법적으로는 건축주에게 전혀 문제가 없다.
같은 날 찾은 인천 남동구 일반상업지역의 일부 오피스텔에서도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사정은 비슷했다. 인천시청에서 도보로 5분여 거리에 있는 13∼15층 오피스텔들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난 대로를 따라 3∼4m 간격으로 늘어섰다. 오후 2시쯤 채광(採光)을 확인하니 일부 가구는 옆 건물이 드리운 그림자 탓에 기대할 수 없을 듯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일반상업지역에서는 지난해 여름 30층짜리 오피스텔 건설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근 37층 아파트 거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10m 안팎 거리 북쪽에 오피스텔이 들어서면 일부 가구의 일조권 피해와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는 게 그 골자였다. 최근 이 아파트 관리소 측에 문의해 보니 그동안 주민들과 관계 당국 사이에 논의가 여러 차례 진행됐으며, 행정절차와 안전상 문제 등을 고려하느라 1년 가까이 흐른 현시점까지 오피스텔의 공사 허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업지역 내 일조·이격거리 분쟁 반복… 법조계 “보상범위 넓히는 노력 필요”
민법 제242조는 건물 축조에 관해 특별한 관습이 없으면 경계에서 50㎝ 이상 거리를 둬야 한다고 밝힌다. 최소 간격만 두면 된다는 뜻이어서 앞선 오피스텔들은 이 조항에 따라 위법 건축물은 아니다. 다만 일반상업지역 내 주상복합건물 건설이 잦아진 만큼 일조권 등을 둘러싼 분쟁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법조계는 국토계획법상 토지의 효율적 이용 미덕이 강조되는 상업지역에까지 주거지역에 준하는 이격거리 등의 규정을 두면 자칫 법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주상복합 건물 건설이 늘고 있는 실정과 상업지역의 주거지역 가속화 등을 고려하면, 주거환경 침해 문제를 이대로 방관할 수만은 없다고 부연한다.
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의 주덕 변호사는 “상업지역에서 일조권 침해가 발생하면 사법부가 실질 주거지역으로 쓰이는지 여부를 살펴서 침해보상 대상의 범위를 넓히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며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상업지역이라고 해서 주거환경 침해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지 말고, 사업승인 단계에서 심도 있게 침해 여부를 살펴 피해를 막고 관련 보상의 최대화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사법·행정에 문제 해결의 길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주 변호사는 그러면서 2020년 부산의 한 상업지역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 중이던 시행사를 상대로 인근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아파트 주민들이 제기했던 일조권 피해 관련 소송을 언급했다. 당시 법원은 이 사건에서 시행사가 층수를 낮춰 아파트를 지으라고 판결했었다. 주 변호사는 “상업지역이라도 주거환경 침해를 방관하진 않겠다는 구체적 운용의 묘가 앞으로도 발휘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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