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 부모, 비난 댓글 수백명 고소
100만~200만원 내면 고소 취하
“관종” 댓글도 포함… 돈벌이 비판
“악플 처벌 방법 마땅찮아” 반론도
檢 모욕죄 접수 20년 새 25배 폭증
법조계선 법리 보완 목소리 커져
“개념 모호… 수사 가이드라인 필요”

A씨는 지난달 서울 서대문경찰서로부터 “모욕죄로 고소를 당했으니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2020년 고 김민식군 관련 기사에 “부모들 꼴 보기 싫다”는 내용의 댓글을 단 게 화근이었다. A씨는 최근 ‘혐의 없음’으로 검찰 불송치 처분을 받았지만 여전히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는 “고소인의 이의신청이 있으면 사건이 검찰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해서 아직 지켜보는 중”이라며 “전과자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3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스쿨존에서 어린이 상해·사망 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 처벌하도록 한, 이른바 ‘민식이법’(도로교통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입법의 계기가 됐던 고 김민식군의 부모가 법무법인 에이파트와 법무법인 기회, 법률사무소 대환을 대리인으로 선정한 뒤 비난성 댓글을 단 누리꾼 수백 명을 모욕·명예훼손 등 혐의로 집단 고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법인 에이파트 한곳에서 300명가량을 고소한 점을 고려할 때 총 고소 규모는 500명을 훌쩍 넘을 가능성이 높다.
고소를 당한 누리꾼들 사이에선 “김군 부모가 합의금을 노리고 집단 고소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관종이네’ 등의 댓글도 고소를 당한 데다 합의금을 내면 소를 취하해 주는 사례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합의금은 100만∼200만원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에이파트는 “댓글 내용의 정도에 따라 합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합의를 하지 않기로 의뢰인과 정한 댓글도 있다”고 설명했다. 합의금을 노리고 고소를 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비난 댓글을 단 누리꾼들을 집단 고소한 것을 단순히 합의금 목적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지속적이거나 집단적인 악플을 차단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이 법무법인을 통해 악플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 고소를 진행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모욕죄가 비판적인 의견을 입막음하거나 합의금을 받아 내기 위한 장치 등으로 오용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5년 강용석 변호사가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을 단 누리꾼들을 집단 고소하자, 인터넷 전문 시민단체 ‘오픈넷’은 강 변호사의 고소가 남발 수준이라며 ‘모욕죄 합의금 장사 주의보’라는 성명을 냈다. 강 변호사는 입에 담기도 힘든 모욕성 댓글 작성자만 선별적으로 고소했다고 주장했으나 오픈넷은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아 낸 댓글을 예시로 제시하며 반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모욕죄 논란이 되풀이되고, 관련 사건이 급증하면서 법조계에서는 관련 법리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모욕죄는 인터넷 발달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검찰연감에 따르면 2001년 검찰이 접수한 모욕죄 사건은 2069건. 2011년 처음으로 1만건을 넘어섰고, 2020년엔 5만1598건으로 2001년에 비해 약 25배 급증했다.
인천 남동경찰서 이승민 경정(변호사)은 지난해 발표한 ‘형법상 모욕죄에서 모욕의 개념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모욕죄 형사처벌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경정은 “일선 수사 현장에서 모욕 고소장을 보면 술자리·주차문제 등 주민들 간 분쟁, 온라인 게임 중 채팅 등 사소한 분쟁에서 시작된 욕설과 댓글 내용이 상당수”라며 “작은 무례와 멸시로 시작된 욕설에 대해 형사처벌 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혜원 법률사무소의 서혜원 변호사도 “누가 봐도 모욕적이고 상대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경멸하는 표현이라면 처벌을 해야겠지만 과도하게 고소를 해서 모욕죄를 남용하는 사례도 보인다”며 “수사기관이 모호한 모욕죄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어서 남용사례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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