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서면 통지도 안 해” 사측 패소

회사에 첫 출근한 다음날 권고사직 형태로 회사를 떠나게 된 근로자에 대해 법원이 ‘부당 해고’라고 판단했다. 회사와 근로자가 근로관계 해지에 상호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없고, 해고시기와 사유가 서면으로 통지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는 한 화장품 제조·판매업체가 근로자 A씨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받아들인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회사 측 패소로 판결했다.
2020년 7월1일 경영지원실장으로 입사했지만 다음 날 퇴사한 A씨는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지방노동위에 구제를 신청해 인용 결정을 받았다. 사측은 재심을 신청했으나 중앙노동위도 같은 결론을 내리자 지난해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측은 “A씨의 퇴직은 노사 합의 하에 원만하게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사측은 특히 “사전에 A씨에게 회사 재정난, A씨의 역량 부족 등 근로관계를 종료할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사유를 상세하게 설명하며 권고사직을 제안했다”며 “A씨도 거부감 없이 동의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자발적 퇴사’의 근거로 “A씨가 퇴사하면서 부당해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퇴사 1주일 만에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신청해 네 차례 실업급여를 수령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A씨가 퇴사한 날 회사 임원과의 면담 자리에서 녹음한 파일이 판단 근거가 됐다. A씨는 “경영상의 이유로 나를 해고하는 것이냐”라고 물었고, 임원은 “경영상의 이유가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자발적 퇴사가 아닌 사측의 해고라는 뜻이다.

A씨의 실업급여 신청이 자발적 퇴사의 근거라는 원고 측 주장에 대해선 “이런 사정은 해고가 이미 성립된 뒤에 발생하는 것”이라며 “원고와 합의해 근로관계를 해지했다는 근거로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해고는 근로기준법에 정한 서면 통지 의무를 위반해 효력이 없는 부당해고”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서면으로 해고 사유와 시기를 통지하지 않으면 해고는 효력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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