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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창신동 모자, 과거 80년 된 집 매매계약 돌연 포기 왜?

입력 : 2022-04-27 06:00:00 수정 : 2022-04-27 06: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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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생계 위해 2억 대에 내놔
당시 중개인 “가격 올리고 싶어 해”
전문가 “유일한 터전이자 자산
매매 포기, 욕심 치부해선 안 돼”

집 팔아도 안정된 삶 영위 어려워
‘소득환산 기준’ 개선 필요 목소리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된 서울 종로구 창신동 목조주택. 조희연 기자

1930년대에 지어진 허름한 목조 주택 한 채를 가졌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생활고로 숨진 서울 종로구 창신동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2년 전 부동산 매매계약서까지 작성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이들이 생계를 위해 집을 내놨다가 팔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돌연 매매를 포기했다. 사망 한 달 후에야 발견된 모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집을 팔아도 재산 기준 때문에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는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를 다시 한번 들춰냈다.

 

26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모자의 단독주택 매매 계약서에 따르면, 노모 한모(82)씨 명의로 된 해당 주택은 2020년 2월12일 2억5000만원에 계약될 예정이었다. 모자의 집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송모(63)씨는 기자에게 “2년 전 아들(이모씨)이 집을 팔겠다며 찾아왔다”고 했다.

 

송씨는 “당시 이씨에게 ‘저 집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지자체에서 도움도 못 받으니 집을 팔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요양원에 모셔라. 너는 저 집에서 전세 1억원에 살아라’라고 조언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맡겨놓은 인감도장을 찾으러 영등포 이모 집에 다녀온 이씨가 돌연 “개포동 15평 주공아파트는 15억∼17억이라는데, 우리 땅은 21평이니 10억 이상 주지 않으면 안 팔겠다”며 마음을 바꿨기 때문. 송씨는 “매수인한테 10억으로 올려달라고는 못하겠어서 ‘매도인 생각이 바뀌어서 못 팔게 됐다’고 둘러댔다”고 설명했다.

 

송씨에 따르면 당시 2억5000만원 수준이던 해당 단독주택은 재개발 기대감으로 현재 4억5000만∼5억원까지 뛰었다. 그는 “차라리 그때 집을 팔았다면 잘 먹고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종로구 창신동 소재 주택에서는 다 쓰러져가는 주방 싱크대와 바닥에 널린 쓰레기, 가재도구 등이 눈에 띄었다. 김동환 기자

이씨가 부동산 거래를 망설인 것을 두고 단순히 더 비싸게 팔려는 욕심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등기부 등본 확인 결과, 이들은 1982년부터 40년간 이 집에서 살았다. 지어진 지 80년이 넘어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목조 주택이지만, 심근경색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노모와 고혈압 등 지병으로 일할 수 없는 아들에겐 평생의 터전이자 유일한 자산이었다. 두 사람 모두 병원비와 약값이 지속적으로 들어가고, 생계비는 노모의 기초연금 50만원 정도가 전부인 상황에서 ‘더 받고 팔수 있다’는 주변 조언에 모자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집 한 채 말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니, 집을 통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약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6개월간 전기요금 26만원이 연체되고 생필품조차 외상으로 사야 할 만큼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이씨는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노모 소유로 된 주택의 공시지가가 1억700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생계급여 지급 대상을 가리는 소득환산 기준에 따라 이들 모자에게는 월 261만원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 2인 가구 기준인 97만원을 훌쩍 넘었다.

모자가 살던 창신동 주택 대문에 6개월 동안 전기요금 26만여원이 체납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조희연 기자

김윤영 활동가는 “최근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가구의 생활 수준이나 고정 소득은 변하지 않음에도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있다. 집을 판다고 수급자 자격을 유지하거나 대단히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새롭게 옮겨간 집의 환경은 하향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년 동안 공시가가 많이 올랐는데, 정치권은 종합부동산세 문제만 신경 쓰고 기초생활수급자가 재산 기준 때문에 탈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후보 시절 생계급여 대상자를 늘리겠다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재산소득환산제에 재산 컷오프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낸 바 있다. 이를 위해 “일정 금액 이하 거주주택의 주거용재산 한도액 초과분에 대한 주거용 재산 환산율 적용을 폐지 또는 대폭 완화”하겠다고도 명시했다. 기본재산액은 대도시 기준 2020년 6900만원으로 11년 만에 1500만원 인상된 이후 조정되지 않고 있다. 빈곤사회연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3주 전 구체적인 이행 방법과 내용을 알려달라며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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