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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공간 예술에 시간의 흐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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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15 22:45:56 수정 : 2022-04-15 22: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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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보초니,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모자 쓴 한 남자가 어딘가로 바삐 가고 있다. 바람을 가르며 길을 재촉하는 모습에서 휙휙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런 모습을 조각작품으론 어떻게 나타낼까? 미래주의 작가 움베르토 보초니는 바람에 옷깃이 휘날리는 형태들을 연속적으로 이어 붙여 속도감까지 표현했다. 제목도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라 붙였다. 청동 표면을 반짝반짝 빛나도록 처리해서 움직임에 활기도 더했다.

20세기에는 급변하는 복잡한 사회 상황만큼이나 다양한 미술양식들이 부침을 거듭했다. 그중에는 조형적인 방법보다 예술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 주목하고, 예술가가 보여야 할 태도나 관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경향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한 예가 미래주의였다. 미래주의는 1909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미술·문학·연극·음악 등에 걸쳐 나타났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지속됐다. 특히 미술에서는 기계문명 시대를 맞아 변화한 현대인의 의식과 감성에 부응하는 미술을 이루려 했다. 기계나 자동차 등 과학기술 발달로 사람들의 감각세계도 변한 만큼 그 안에 담긴 속도감, 활력, 움직임 자체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초니는 “자동차 밸브가 열리고 닫히는 리듬은 동물 눈꺼풀의 깜빡임만큼 아름답지만, 그것보다 더 무한히 새롭다”고 했다. 자연에서 얻는 감흥보다 기계 시대 움직임이 더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그가 창안한 미래주의 조형 방법을 적용했다. 걸어가는 사람과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을 조각적으로 해석했다. 바람결과 펄럭이는 옷자락이 공간 속에 그리는 흔적을 해체된 형태로 분할하고, 연속적으로 이어 붙였다. 그래서일까. 청동으로 만들어졌지만 전혀 무거운 느낌을 주지 않고, 경쾌한 움직임을 연상케 한다.

새로운 점은 또 있다. 조각은 정지된 순간을 담는 예술이지만, 그 안에 과거와 현재의 형태를 함축적으로 압축해 담으려 했다. 이 점이 공간예술로 분류되는 조각작품 안에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려 한 시도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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