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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직장인, 주 52시간 제외 검토…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뭐길래

입력 : 2022-04-09 22:00:00 수정 : 2022-04-09 21: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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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 아닌 업무성과로 급여 결정

尹, 후보 시절부터 주 52 시간제 폐지·개편 언급
학자·기업 “성과중심 평가로 생산성 높여야”

근무시간 예외 적용 시 악용 우려도

“주 120시간 과로사가 멀지 않았다.”

 

지난 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고소득 근로자의 근로시간 제한을 없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난 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반응이다. 해당 게시글에는 “구로의 등대(구로의 IT 업체 사무실 불이 24시간 켜져 있다고 해서 유래된 말)가 다시 켜지나요”, “한국에서는 고소득이라고 하면 연봉 7000만원 정도인데 갈려 나갈 사람이 많을 듯”과 같은 댓글도 달렸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한 네티즌은 “주52시간 도입 후에도 초과 근무를 하고 있지만 예전보다 눈치를 덜 줘서 사람답게 사니까 좋더라”면서 “만약 근로시간 제한이 다시 없어진다면, 생각만해도 싫다”고 말했다.

 

인수위가 주52시간 근로제 유연화 방안과 함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이날(8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다시 야근지옥이 될까 우려스럽다”고 밝혔고, 근로시간 단축을 주장하고 있는 노동계와의 충돌도 우려된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연간 임금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인 근로자에게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근로제도다. 근무시간에 비례해 업무의 성과나 질을 측정하기 어려운 고위관리나 행정직, 전문직 종사자들의 경우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지불하자는 취지에서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미국 공정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이 제도의 대상은 연봉 10만 달러(원화 약 1억2000만원) 이상인 사무직 근로자로 이들은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는 대신 추후 업무성과를 토대로 추가 급여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성과급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일본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본딴 ‘탈시간급제’를 2019년 도입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사진기자단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주 52 시간제 폐지나 개편 등을 언급하며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쉴 수 있어야 한다” 등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근로시간 관련 공약으로 △선택적 근로 시간제 정산 기간 1년으로 확대 △연간 단위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전문직 직무의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인수위에서도 경직적인 근로시간 규제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스톡옵션을 받기로 한 사람과 일반적인 근로자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제도는 이미 2019년에도 추진된 적이 있다. 당시 김병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위 3% 연봉을 받는 고위직이거나 책임자급에 해당하는 노동자에 대해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 적용을 예외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었다. 다만 이는 당론이나 정부 방침과는 달라 실제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IT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A씨는 “주 52시간이라는 틀 안에 묶여서 개발에 차질을 빚어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면 직원들에게도 손해”라며 “장시간 노동이 반복되게끔 악용하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근무시간에 묶이는 것보다는 스톡옵션이나 성과급 등을 주는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소득자의 경우 평가기준을 성과중심으로 바꾸고 업무수행에 유연성을 부여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게 이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학자들과 기업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처럼 주52시간 근무 제도의 예외를 허용하게 되면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실제로 소득을 기준으로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스톡옵션을 받는 스타트업 종사자보다는 대기업 사무직이나 전문직 종사자가 그 대상이 되고, 결국 노동 시간에 비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쟁점은 대상과 규제 범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연봉 1억원 이상이 대상이라면, 삼성전자와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 은행권, 빅테크의 직원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과급을 연봉에 포함할지 여부도 중요하다. 근무 시간 예외를 대폭 허용할 경우 야근이 늘어날 수 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범위를 일부 초과하는 연봉보다, 그 이하의 연봉을 주는 기업이나 직종이 더 각광받는 역선택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활동하는 권영국 변호사는 “노동법의 기본은 노동자들의 상황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라며 “고소득자라고 근로시간 규제에서 벗어나고 사무직이라고 벗어나고 이런 식으로 예외를 허용해주는 순간 계속해서 이런 예외 상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과로사를 완전히 만연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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