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들이) 경유차를 살 이유가 없어져 버렸지.”
30일 서울 성동구 장한평 중고차시장. 이곳에서 40년 가까이 중고차를 팔아온 최모(66)씨는 이같이 말했다. 최씨는 “작년보다 경유차를 찾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경유차는 신차도 거의 안 나오다 보니 좋은 중고차도 매물도 없다”며 “기름값도 휘발유랑 똑같아졌는데 누가 환경부담금 내면서 사려고 하겠나”고 요즘 상황을 설명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데 더해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경유 가격이 급등하며, 중고차 시장에서 경유차의 인기가 급락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휘발유와 전기차에 집중하면서 디젤차 퇴출이 빨리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장한평 중고차시장에서 만난 매매상들은 경유차 인기가 떨어졌다면서, 디젤(경유) 엔진이 대세였던 레저용 차량(RV)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요즘엔 가솔린 엔진 차량을 찾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연비가 좋은 LPG 거래량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중고차 매장을 운영하는 김모(58)씨는 “작년에 요소수 사태도 나고, 디젤을 사면 무슨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생겨난 것 같다”며 “디젤차 팔고 LPG 차로 바꾸겠다는 사람도 꽤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인기 하락은 유가의 영향이 크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9일 기준 전국 평균 ℓ(리터)당 경유 가격은 1920.32원으로 휘발유 가격인 2000.45원에 근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ℓ당 약 200원 차이가 났지만, 지금은 약 80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서울 일부 주유소에서는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선 곳도 있다.

경유와 휘발유 가격의 차이가 없어진 이유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 경유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로 경유 수입의 60%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의 경유 재고가 바닥까지 떨어지면서, 전 세계 유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유차 소유주 중에서도 전기차·LPG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적어도 ‘다음 에는 경유차는 안 산다’는 분위기다.
이날 서울의 한 주요소에서 만난 손민수(47)씨는 “서울에서 수원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경유 가격이 너무 올라서 차를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지금 타고 있는 승합차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로 나오면 교체를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화물차 운전사 김기수(가명·60)씨는 “예전 같으면 5만원 넣으면 500㎞는 탔는데 요즘은 400㎞도 못 타는 수준”이라며 “화물차는 다들 경유차를 썼는데 요새는 전기차로 많이 바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내연기관 신차 등록 대수는 줄고 있지만 전기차 등록 대수는 크게 늘었다. 특히 경유차의 감소세가 빠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기차는 8591대가 등록돼 전년 동월 대비 320.7% 늘었다. 하이브리드 차도 18.1%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경유차 신차 등록 대수는 23.9% 감소했고 휘발유 차는 12.8% 감소했다. 지난해 말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는 23만1443대로, 2020년(13만4962대)보다 10만대 가까이 늘어났다. 2016년까지만 하더라도 1만855대에 불과했던 전기차가 5년 만에 21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정부는 유가 상승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류세 인하의 폭을 법정 최대한도인 3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유류세를 인하해도 경유보다 휘발유 가격 인하 폭이 크기 때문에, 디젤차 소유주들의 부담은 쉽사리 줄지 않을 전망이다.

신차 시장에서도 디젤차가 점차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차 신규등록을 금지하겠다고 공약해, 경유차의 퇴조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도 디젤 엔진 개발을 안 하고 있고 디젤차의 천국이었던 유럽도 경유 엔진은 이제 끝물”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도 줄이고 자동차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제한을 확대하는 등 규제를 하면서 경유차를 모는 것을 점점 불편하게 만들었다”면서 “승용 디젤은 예상보다 빨리 퇴출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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