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7일 중고자동차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미지정하면서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길이 열렸습니다.
앞서 현대·기아자동차는 구매 후 5년·주행거리 10만㎞ 이내, 자사 품질 점검을 통과한 중고차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했고, 다른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과 SK·롯데 등 대기업도 중고차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비자는 찬성하는 이가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20~60대의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보면, 완성체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는 것과 관련해 ‘긍정적’이라고 답변한 비율이 56.1%로 나왔습니다(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p).
반면 중고차 판매자 단체는 생계형 적합 업종 미지정을 두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대기업이 운영하면 막연히 시장이 좋아질 것처럼 소비자 후생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중고차 시장마저 현대·기아차의 독과점 시장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단체 주장처럼 대기업이 중고차 매매업을 시작하면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가 독·과점으로 인한 불이익을 보게 될까요?
세계일보 영상팀은 소비자 시각을 전해줄 인물로 자동차 리뷰 커뮤니티인 ‘모트라인’ 윤성로 대표를, 판매자 입장을 전해줄 인물로 지해성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을 섭외해 각각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기존 업계 문제점은?
소비자주주권시민회의 설문에서 중고차 매매시장이 불투명·혼탁·낙후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응답자 54.4%는 ‘허위·미끼 매물’을 지목했습니다.
이처럼 기존 중고차 시장에 불신을 만든 대표적인 원인이 바로 허위 매물인데, 이를 두고 지 국장은 “범죄 집단의 행위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허위 매물은 매매 단지 주변에서 범죄를 목적으로 구성된 조직이 내거는 것”이라며 “연합회에서도 계속 감시하며 경찰에 고소·진정을 했지만, 이들은 사이트를 옮겨 다니며 다시 허위 매물을 올린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에는 공권력에서 강력하게 해결해줘야 한다”는 게 지 국장의 설명입니다.
이를 두고 윤 대표는 “이런 식의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하는 것만 보더라도 업계가 자정할 의지가 없다고 느낀다”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면서 “허위 매물 판매자가 소비자를 불러서 돈만 뺏고 끝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허위 매물로 소비자를 유혹한 뒤 강매를 하는 탓에 문제가 되는 건데, 매매를 해서 명의가 넘어갔다는 건 허위 매물 판매 과정에 정식 매매 상사가 관여돼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습니다.
◆소비자에게는 이득일까?
윤 대표는 ‘독·과점 탓에 중고차 가격이 올라 결국 소비자도 피해를 볼 것’이라는 연합회 주장을 두고 “역사적으로 어떤 시장에서든 경쟁을 치열하게 해서 그 경쟁이 소비자에게 안 좋은 결과로 돌아간 적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현재 제공되는 사고 내역, 보험 이력만으로는 차량의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없다”며 “중고차가 어떤 관리를 받아왔고 현재 상태가 정확히 어떻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체계를 대기업이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지 국장은 “현대·기아차가 팔 5년·10만㎞ 이내 매물은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현대·기아차에서 나머지 매물을 경매로 내놓을 때도 차익을 남길 것이기 때문에 일반 매매업자가 상품을 사들이는 가격도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비자가 원했던 시장보다는 가격만 올라간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상생 방안은 없을까?
현재로선 대기업이 중고차 매매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는 없게 된 만큼, 기존 매매업자와 어떻게 상생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 국장도 “대기업이 시장에 안 들어오면 가장 좋겠지만, 소비자가 진출을 원하고 있는 건 사실이고 의미가 있는 부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현대·기아차가 인증 프로그램을 통해 점검한 차량을 기존 업자들에게 도매하는 것이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를 위해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시작부터 조건을 내걸기보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후 문제가 생겼을 때 사후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윤 대표 의견입니다.
윤 대표는 “예를 들어 대기업들이 대형 슈퍼마켓 사업에 진출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부작용이 생겨나자 격주제 휴무 등 규제가 하나씩 나왔다”며 “유달리 인증 중고차 사업만 시작부터 조건을 건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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