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한국의 혼인건수가 처음으로 20만건 미만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건수가 확연히 준 가운데 혼인을 늦게 하는 추세도 갈수록 짙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0대 인구의 감소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등이 혼인건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9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나타나 전년 대비 9.8% 줄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수준이었다. 혼인 건수는 10년 전인 2011년 32만9000건이었지만 2016년(28만2000건)에 20만건대로 떨어졌고, 지난해 10만건대를 기록하는 등 감소세가 커지고 있다. 성별로 보면 남자는 30대 초반(-10.3%),여자는 20대 후반(-14.4%)에서 가장 많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혼인을 늦게 하는 경향도 짙어졌다.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3.4세, 여자 31.1세로 각각 0.1세, 0.3세 상승했다. 10년 전보다 남자는 1.5세, 여자는 1.9세 높아진 것이다.
혼인 건수가 감소하고 있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정부는 혼인을 많이 하는 연령층인 30대 인구가 많이 감소하고 있고,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변화,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결혼 연기 등이 혼인 건수 감소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인 인구감소, 코로나19 외에 혼인을 막는 배경으로 지목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지난 2020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30대 비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설문조사를 보면 비혼 청년 10명 중 9명이 결혼을 ‘선택’이라고 답했다. 결혼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 여성은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에’(25.3%), ‘가부장제, 성 불평등 문화 때문’(24.7%)이라고 답했고, 남성은 ‘현실적으로 집 마련 등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51.1%)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여성은 결혼이 불러올 파장에 대한 두려움, 남성은 경제적 조건이란 현실적 어려움이 결혼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혼인 건수의 감소는 자연스레 출산율 감소로 이어진다. 역대 정부는 출산율 감소가 국가적 위기를 불러온다고 판단,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2006~2020년 저출산 대책 등으로 380조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지난해 여성 한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최저치를 갈아 치우는 등 실패만 거듭해왔다.

정부와 학계 안팎에선 현금성 지원을 통해 출산율 제고를 지상과제로 삼는 기존의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을 내버려둔 채 재원을 쏟아 부어 출산율이란 결과만 높이려는 대책은 근시안적이며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실제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20년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출산 장려’ 정책에서 벗어나 ‘모든 세대의 삶의 질 보장’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혼인을 기피하는 경향을 돌리는 건 새 정부에게 주어진 주요 과제란 지적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국사회의 지나친 경쟁 구조’를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윤 당선인은 “출산율을 높이려면 임신출산 지원, 일자리 확대, 주거 안정, 보육, 일·가정 양립 등 모든 제도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지나친 경쟁사회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며 “그렇게 해서 청년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뤄서 일자리 문화가 그 기회가 균형을 잡아줘야만 지향점이 다원화되면서 아이를 낳고 싶은 나라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혼과 육아를 둘러싼 경제적 조건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혼인 기피하는 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은 지난해 발간한 ‘가치관 분석을 통한 저출산 대응 방안’을 통해 성평등 문화 정착이 저출산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주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개발원은 보고서를 통해 ‘성평등이 지배적인 사회적 규범으로 확립돼 성역할 변화가 일어나면 새로운 성평등 균형이 나타나 출산율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고 한 덴마크의 정치학자 에스핑 앤더슨의 발언을 인용, “가정, 직장, 사회 내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결혼과 출산을 하더라도 경력이 단절되는 등 차별을 겪지 않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모델을 (정부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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