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던 선원들을 구출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전해진 가운데, 당시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가 석해균 선장을 위해 4억4천 에어 앰뷸런스를 불러야 했던 이유를 전했다.
지난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을 다뤘다.
2011년 1월15일, 11000톤 대형 화물선인 삼호주얼리호에는 선원 21명이 타고 있었다. 당시 이란에서 화물을 싣고 스리랑카로 가던 배는 아라비아 해에서 해적의 공격을 받았고, 석해균 선장은 급히 선원들을 대피시켰으나 해적들이 엔진을 끄고 수색에 들어가 대피했던 선원들이 모두 발각됐다.
해적들은 몇 달 전 같은 회사의 삼호드림호를 납치해 100억 넘게 받은 바 있던 인물들이었기에, 대한민국 정부는 피랍 현장에 즉시 청해 부대를 투입했다.
당시 석해균 선장은 기지를 발휘해 컴퓨터로 바둑 게임을 하겠다고 한 뒤 해군에 “해적 10명 이상, AK소총 무장, 소말리아로 이동 중”이라고 메일을 보냈고, 해군은 “소마라리아에 도착하는 걸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석 선장은 해적들에 “너희가 엔진을 정지시킬 때 고장이 났다. 못 믿겠으면 직접 테스트해라”라며 엔진을 고치는 척 시간을 벌었다고.
당시 작전을 위해 출정한 해군 최영함에는 300명이 타고 있었고 그 중 30명의 UDT 대원들이 제일 먼저 주얼리호에 닿았다. 그런데 순간 숨어있던 해적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고, 당시 UDT 대장이 총에 맞아 철수, 이후 김규환 대위가 작전을 이끌었다.
당시 해군은 피랍된 선원들에게 ‘부산 갈매기’ 노래로 공격 신호를 보냈고 최영함과 헬기가 총격을 시작했다. 이같이 시작된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피랍 6일 만에 선원들이 구조됐으나, 석 선장은 흥분한 해적들에게 6발의 총을 맞은 채 쓰러져 있었다.

석선장은 “해적들이 나를 캡틴 캡틴하며 찾는데 저승사자 목소리 같았다. 해군이 들어오니 나를 의심한 것 같다. 총을 탕 하고 쏘는데 그 뒤로는 의식이 없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당시를 전했다. 결국 석 선장은 오만으로 이송되어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이국종 교수를 파견했다.
이국종 교수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몸에서 이미 괴사가 일어나 벽돌처럼 딱딱해지고 몸이 부푼 상황이었다. 장기 파열이 일어나서 그렇다. 지혈도 안 되고 수혈도 어려워 한국에서 수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국종 교수는 40만불에 이르는 에어 엠뷸런스 비용을 자신이 내겠다고 하며 석선장의 수술을 추진했고, 무사히 한국에 도착한 석선장은 수술을 받은 후 의식을 찾는데 성공했다.
석 선장은 “눈을 뜨니 ‘한국입니다’ 라는 현수막이 보이더라. 후송됐구나.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사실 저는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은 아니지 않냐. 그런데 그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대원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그분들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켰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석해균 선장은 “절대 포기하지마세요. 길은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감동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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