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생후 16개월 된 여아 ‘정인이(가명)’ 사망 사건의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진정서가 지난 3개월여 동안 1만4000건에 달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검찰 측의 상고 소식이 알려진 후(세계일보 2021년 12월2일자 단독 보도 참조) 국내에서 대법원에 제출된 진정서는 7000건 정도이며, 17일 한 데 취합해 대법원에 제출된 ‘외국인 엄마’들의 진정서는 6600건으로 집계됐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 따르면 이날 제출된 진정서는 가해자 엄벌을 바라는 마음에서 외국인 엄마들이 직접 한글 쓰는 법을 배운 후 보내왔다. 진정서에는 “저는 아이의 엄마로서 판사님께 간절하게 읍소한다. 재판부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아 달라”, “항소심 재판부의 감형 판결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등 내용이 적혔다.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자는 “정인이는 태어나서 자신의 삶, 어느 한 부분도 선택하지 못한 채 부모라 불리는 이들에게 살해당해 삶을 마감했다”며 “이 나라에서 일어난 부끄러운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올곧은 시선으로 바로 잡아 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발언자는 “2심 판결 후, (사건이) 많이 잊혀져가는 것 같다”고 사회의 지속된 관심을 촉구한 뒤, “열심히 싸워주시는 검사님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언론에 알려지면 형량이 높고, 알려지지 않으면 형량이 낮은 고무줄 같은 사법부의 재판도 고쳐야 한다”며 “아동학대를 반드시 근절하고, 대법관님들께서도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정인이의 양모 장씨에게 징역 35년에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200시간을 선고하고, 아동관련 기관 취업 10년 제한 명령도 내렸다. 같은 해 1심에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장씨에게 무기징역이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감형됐다. 장씨의 학대를 알고도 묵인한 혐의로 기소된 양부 안모씨는 1·2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두 사람은 모두 상고장을 제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장씨의 범행이 ‘계획적’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판결했다. 이에 부모들 사이에서는 비판이 이어졌고, 범행이 ‘계획적’이 아니라는 재판부 판시에 “살해 계획이란 자신과 대등 또는 그 이상이거나, 대항력이 있는 대상을 상대로 할 때만 필요한 것”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정인이가 장씨와 대등한 관계의 대항력을 갖추는 존재로 재판부가 인식했다는 주장으로 풀이됐다.
재판부가 장씨의 스트레스 등이 발현된 점을 논한 데는 “피고인의 범행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법원이 피해자의 사정을 진정 모르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성인에게 무력한 존재인 피해자의 특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학대인지 감수성 등이 결여된 판단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아가 장기간 수형생활에서 장씨에게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던 판시에는 “매우 위험하고 책임 없는 판단”이라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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