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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띄운 핵공유 논쟁, 7월 참의원 선거 겨냥한 노림수?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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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3-19 15:00:00 수정 : 2022-03-19 11: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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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 피폭국 日, 우크라 사태로 ‘시끌’

아베 TV서 “우크라 전략핵 남겼더라면”
獨·伊처럼 美 핵무기 공유 가능성 제기
자민당 인사 등 우익 기다렸다는 듯 동조
모테기 간사장 “억지력 관점서 다루어야”

기시다 총리는 “비핵 3원칙과 양립 불가”
제1야당 대표 “위기 이용한 논의 부적절”
피폭자 단체 “히로시마·나가사키 기억을”
“총리 압박·참의원 선거 지지자 결집 의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말발’은 역시 셌다. 지난달 27일 한 TV프로그램에 나와 던진 한 마디에 일본은 ‘핵공유’ 논쟁으로 뜨거워졌다. 그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 러시아, 영국이 주권과 안전보장을 약속했던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전술핵을 일부 남겨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논의도 있다. 일본도 여러 선택지를 내다보고 논의해야 한다.”

독일, 이탈리아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일부가 자국에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하고 공동운용하는 핵공유를 일본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으로 ‘비핵 3원칙’(핵무기는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국시(國是)로 여기는 나라이지만 우크라이나 위기에 편승한 이 발언이 기점이 돼 찬반 논쟁이 달아올랐다.

우익인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동조하고 나섰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용인할 수 없다”며 즉각 선을 그었고, 입헌민주당 등 야당들도 “핵무기를 논의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2차대전 당시 피폭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는 개인, 단체들이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한 비핵 3원칙을 굳게 지켜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겉으로 보기엔 국가 안보를 둘러싼 논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핵공유 논쟁을 발판으로 안보감을 고조시켜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수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커지는 안보불안에 “핵공유, 개혁 차원에서 다뤄야”

아베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한 우익의 호응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이었다. 무엇보다 자민당 주요 인사들의 발언이 눈에 띈다.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은 핵공유가 핵무기 자체를 물리적으로 공유하는 구조는 아니라고 지적하며 “비핵 3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핵공유는 중장기적으로 억지력 확보라는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요즘 일본 정계의 강경우파 중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도 같은 의견을 보탰다. “비핵 3원칙 중 ‘반입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일미동맹의 실질적인 억지력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큰 개혁을 위한 논의의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를 통해 세력을 크게 불린 일본유신회는 지난 3일 ‘핵공유 논의의 시작’ 등을 담은 제언을 정부에 제출했다. 우크라이나의 위기를 거론하며 “현재 국제정세 속에서 핵보유국의 침략 리스크가 현실에 존재한다”며 방위비를 국내총생산의 2%까지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았다.

 

핵공유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이처럼 적극적인 표현할 수 있는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일본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이 더욱 강해진 상황이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4∼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의 침공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행사로 이어져 일본 안보에도 위협이 될 것’이란 응답이 81%에 달했다. JNN방송이 지난 5∼6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핵공유를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18%, ‘핵공유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관련 논의는 해야 한다’는 의견이 60%에 달했다. ‘논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18%에 불과했다. 아베 전 총리의 주장처럼 핵공유 논의 자체를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국민들이 자국을 둘러싼 안보정세가 위협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특히 중국의 위협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핵공유 주장처럼) 일본의 안보정책이 미국과 일체화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유일한 피폭국, “핵으로 인한 처참한 사태 알려야”

핵공유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용인할 수 없다”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해 “핵공유는 인정할 수 없다. 비핵 3원칙과 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의 반대도 분명하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는 “위기를 이용해 핵을 논의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핵무기가 있으면 공격받지 않는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필요한 방위력을 착실히 정비하면 된다”고 말했다. 공산당은 일본유신회가 핵공유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푸틴 정권과 똑같은 ‘힘의 논리’다. 세계의 반전여론과도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조차 “당 차원에서 논의할 예정이 없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핵무기 피폭 경험과 기억을 가진 이들의 비판은 특히 거세다. 피폭자만이 가능한 목소리로 ‘반핵’을 부르짖고, 핵공유 주장을 비난했다. 13살에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사로 세츠코가 러시아의 핵공격 위협, 핵공유 논란 등을 두고 기시다 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와조각과 돌무더기에서 기어나와서 본 무서운 광경과 무참한 형태로 목숨을 빼앗긴 가족,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 지금까지 핵무기 폐기를 호소하는 원동력이 됐다. 핵무기가 사용되면 어떤 처참하고 비인도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지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일본의 역할이다.”

나가사키원폭피재자협의회 회장인 다나카 시게미츠는 “피폭의 참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억지력의 한 요소로서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 그것이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후대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니시니혼신문은 피폭으로 백혈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둔 나가사키의 한 고등학생 이야기를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2001년 시작돼 현재 200만명 이상이 서명한 고등학생 핵무기철폐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 학생은 “(핵공유를 주장하는) 그 사람들에게는 피폭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지역 언론은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힌다.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한 비핵 3원칙을 굳게 지켜야 한다”,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직접 경험한 피폭국으로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등의 지역 여론을 전했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는 지난 2월 발표한 성명에서 핵공유 주장에 대해 “국민을 핵전쟁으로 이끌고 생명을 빼앗고 국토를 폐허로 만들려는 위험한 제안”이라며 “‘다시는 피폭자를 만들지 말라’는 사명으로 해 온 우리의 노력을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핵공유 논쟁은 기시다 압박 전략일까

핵공유와 관련된 논란을 따라가다 보면 ‘현실화될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른 시일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고, 된다고 해도 “평화헌법 개정과 같은 지난한 논쟁을 거쳐야 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한다. 아베 전 총리 등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핵공유 논의가 가지는 의미는 뭘까. 아베 전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우파들이 보수이긴 해도 결이 다른 기시다 총리를 압박하고,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주간지 프라이데이는 최근 보도에서 아베 전 총리가 핵공유 논의를 제안한 것은 “기시다 정권을 흔들려는 확신범적인 것”이라는 총리관저 관계자의 견해를 전했다. 자민당의 한 의원은 “히로시마 출신의 정치인인 기시다 총리가 핵공유 논의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흔들려는 것이다. 여론도 논의 자체는 필요하다는 데 기울어져 있어 ‘기시다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아베 전 총리와 같은 강경우파들은 기시다 총리가 자기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심한다”며 “핵공유 자체를 실현시키기 보다는 (우파들이 바라는 형태로) 적기지공격능력이나 평화헌법 개정과 같은 사안을 기시다 총리가 수용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7월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보수층이 중시하는 국가안보를 강조함으로써 지지층의 결집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지면 권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기시다 총리도 이런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평소 주장해 왔던 것과 보수우익들이 가진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어 기시다 총리로서는 딜레마를 느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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