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공에 1100㎞ 폴란드 이동
11살·7살 자녀와 30㎞ 걸어 국경 넘어
“앞으로 미래 걱정… 폴란드 환대 감사”
EU “우크라 피란민, 수백만명 넘을 것”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인접국으로의 대규모 피란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탈레반을 피해 우크라이나로 왔던 한 아프가니스탄인 가족이 이번에는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폴란드로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28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11살 아들과 7살 딸, 아내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떠나 폴란드 접경도시 메디카에 도착한 40대 아프가니스탄인 남성 아즈말 라마니는 최근 1년 새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집권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거대한 국제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면서 두 차례나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 그와 가족들은 1년 전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우크라이나에 자리 잡으면서 평화의 안식처를 찾은 듯했으나, 이번엔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폭탄 소리에 폴란드로 급히 떠나야만 했다.
앞서 라마니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공항에서 18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위해 일했다. 그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에서의 생활은 좋았다”면서 “내 집과 내 차가 있었고, 월급 수준도 좋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탈레반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와 가족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신세가 됐다. 라마니는 이로 인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결국 라마니는 미군이 아프간에서 전면 철수하기 전이었던 지난해 상반기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아프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내 차와 집, 모든 것을 다 팔았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면서도 “내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프간을 떠나기 위해 타국 비자를 얻으려 노력했고, 마침내 우크라이나로 가기로 결정했다. 비자를 발급해 준 유일한 국가가 우크라이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라마니와 가족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인 오데사에 정착할 수 있었으나, 나흘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또다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1110㎞를 이동해 폴란드 국경을 넘는 신세가 됐다. 그는 폴란드 국경을 30㎞ 남긴 지점부터는 극심한 도로 정체 때문에 걸어서 이동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라마니는 앞으로 닥칠 미래가 걱정되지만, 국경에서 피란민들을 돕는 폴란드 자원봉사자들과 공무원들의 환대로 힘을 얻고 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그들이 우리에게 힘을 줬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흘간 폴란드에는 라마니와 같은 피란민이 21만명 넘게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 외에도 헝가리·루마니아 등 우크라이나 서부 접경국들에는 피란민 수십만명이 몰렸다. 이들 대다수가 우크라이나인이지만, 아프간을 비롯해 콩고민주공화국·인도·네팔 등의 유학생과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AFP는 현행 규정상 폴란드 비자가 없으면 입국 15일 안에 등록해야 하는 만큼, 관련 규정을 개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향후 수백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 EU 회원국 내에 들어온 피란민은 최소 30만명이라고 밝혔다.
야네스 레나르치치 인도적 지원·위기관리 담당 EU 집행위원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회원국 내무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현재 예상되는 우크라이나인 피란민 수는 700만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의 추정치를 인용해 전쟁이 계속될 경우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우크라이나 및 이웃 국가에서 약 1800만명이 영향을 받으며, 우크라이나 내에선 70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하고 400만명은 고국을 떠나 난민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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