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문화재 다섯 점이 새로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의 지정, 공개가 종종 있는 일이고, 다섯 점이 한꺼번에 대상이 되다보니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중엔 특별한 이력으로 눈길을 끄는 문화재가 한 점 있다. 국립고궁박물관(고박) 소장 ‘앙부일구’가 주인공이다. 앙부일구는 해시계로 세종의 명령에 따라 장영실, 이천, 이순지 등이 처음 만들었고 조선 말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돼 보급됐다.
고박 소장 앙부일구의 등장은 극적이었다. 2020년 11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미국에서 환수해 온 유물 한 점을 공개했다. 노란빛을 띤 금속제 표면에서 반짝이는 은빛 선과 글자들이 자잘하게 박힌 앙부일구였다. 그림자를 이용해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정보인 절기를 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성이 뛰어났다. 여기다 이 유물은 예술성이 두드러졌다. 은입사로 섬세하게 새겨진 시각선, 절기선, 한자 등이 아름답고 다리 부분의 용과 거북 머리 모양, 구름 무늬 등 장식도 화려했다. “빼어난 다리의 문양과 정교한 은입사 기법으로 미뤄볼 때 궁중 장인의 작품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앙부일구는 미국에서 경매를 통해 구입했다. 재단은 해외 경매에 출품된 유물을 살펴 본 뒤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는 것은 구매하기도 한다. 앙부일구의 출품 사실은 2020년 1월 포착됐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경매가 수차례 연기되다 8월에야 낙찰을 받았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한 개인이 현지 골동품상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경매를 통해 가치가 큰 국외소재문화재를 환수하는 사례는 가끔 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프랑스 경매에 출품된 것이 확인돼 재단이 참여했고, 2018년 1월 국내로 되돌아 왔다. 이 죽책은 환수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군대가 1866년 강화도 외규장각을 약탈할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터라 반가움과 놀라움은 더욱 컸다.
경매를 통해 유통되는 문화재는 우리나라 것 말고도 숱하게 많다. 일본 문화재도 마찬가지인데, 양으로 따지면 우리 것보다 훨씬 많다. 외국과의 교류가 우리보다 빠르고, 폭넓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물론 출품된 문화재 각각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며 가치가 워낙에 커 환수 필요성까지 제기되는 경우는 드물다.
해외로 유출된 뒤 행방을 몰랐던 일본도 한 점이 경매를 통해 호주로 들어간 사실이 최근 알려진 건 이런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주목되는 건 이 칼이 가고시마 신궁이 소장했던 국보 일본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25일 NHK 보도에 따르면 호주인 이언 브룩스씨는 4년 전 인터넷 경매에서 60만엔(약 625만원)에 일본도를 구매해 소장하고 있다. 브룩스씨의 칼은 날 길이, 새겨진 이름은 물론 판독이 불가능한 두 글자와 함께 ‘도신궁’(島神宮)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까지 가고시마 신궁 일본도와 같다.
방송은 이 칼이 2차 대전 이후 한동안 일본을 지배했던 연합국최고사령부(GHQ)에 접수된 이후 소재불명이 됐다고 보도했다. 브룩스씨가 칼을 산 경매에 공개된 출품자 정보에는 원소장자가 미국 뉴욕에 사는 남성으로 되어 있다. 브룩스씨는 “원소장자의 나이를 고려하면 군속으로 일본에 있다 칼을 가지고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사안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자신이 갖고 있는 칼과 가고시마 신궁 소장 국보의 특징을 비교, 확인한 뒤 결과를 알린 당사자가 브룩스씨 자신이라는 점이다. 외국 문화재를 가진 소장자 혹은 소장기관의 경우, 특히 개인이라면 보관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해도 그것의 의미와 가치, 연원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그는 호주에서 방송된 일본 방송에서 사무라이가 사용한 일본도를 보고 흥미를 갖게 되어 지금까지 약 50점을 수집하고, 관련된 글도 쓴 애호가라고 한다.
반환 의사도 밝혔다. 브룩스씨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생전에는 이 칼을 갖고 있고 싶지만 사후에는 가고시마 신궁에 돌려주도록 유언장에 적어두었다”며 “가고시마 신궁에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문화청은 “실물을 아직 못봤으나 특징이 일치하기 때문에 가고시마 신궁의 것으로 생각된다”며 “소유자의 요청에 응해 진품인 지를 확인하고, 반환을 조율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NHK는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소재불명인 (국가 지정의) 중요문화재는 142건”이라며 “이중 도검이 절반이 조금 넘는 72건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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