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주류 시장에서 가장 시장성 없다고 여겨진 품목이 있다. 바로 와인이다. 물론 수입 와인 시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만든 와인이 시장성이 없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이유는 포도 재배 환경이 유럽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이유였다. 유럽의 포도밭은 대부분 사질토다. 배수가 잘 되는 땅이다. 그래서 포도 열매에 수분이 적고 당도는 높아진다. 비도 적게 온다. 비가 적어야 역시 포도의 당도가 높아지고, 이를 통해 알코올 도수가 건실한 양질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것과 모두 반대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1970~1980년대 국산 와인이 붐을 타기도 했다. 서독을 탐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포도와 그것을 통한 와인 산업을 보고 국내에서도 만들자고 한 것이다. 그래서 경북 영천, 경산, 포항 등에 수백만 평의 포도밭이 조성되고 독일의 대표 화이트 와인 품종인 리슬링 등이 재배된다. 이것을 통해 등장했던 와인이 OB의 마주앙, 해태의 노블 와인, 진로의 샤또 몽브르 등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국산 와인은 맥을 못 추게 된다. 수입 자유화 물결로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당시의 영업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와인은 지역의 문화를 품은 세밀하고 섬세한 마케팅이 필요한 시장. 하지만 당시 제조사들은 소주와 맥주 팔 듯 와인을 팔았다. 결국 2000년대 들어와서는 외국의 와인 원액을 수입, 병입만 한 무늬만 국산 와인이 겨우 명맥을 잇게 된다. 원료는 수입산, 포장은 국산이라는 희한한 구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본 포도 농가는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접 재배한 포도로 진짜 국산 와인을 만들자고 한 것이다. 대부도의 그랑꼬또 와이너리, 영동의 여포의 꿈, 샤토 미소, 컨츄리 와인, 시나브로, 덕유양조 등이 대표적이다. 초기에는 포도 본연의 맛을 그대로 즐기는 맛 자체를 구현해 내는 데 중점을 뒀다. 최근에는 포도 원액을 얼리거나 열매를 말려 당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기후 및 환경 조건을 극복하기도 하고 있다. 여기에 사과 와인, 오미자 와인, 감 와인, 복숭아 와인 등 지역 과실로 만든 와인이 더해졌다.
그리고 우리 땅에서 나온 농산물로 만든 와인을 ‘한국 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와이너리를 개방, 체험과 견학을 통해 두꺼운 팬층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한번 방문해서 생산자와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팬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홈술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와인은 그 영역은 더욱 넓히고 있다. 인터넷으로 구매가 가능한 것은 물론 보틀 벙커, 와인엔 모어 등 대형 와인샵에서 취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 JW 메리어트 호텔 등 특급 호텔에서도 한국 와인을 리스트에 넣기 시작했다.
우리 농산물이라는 부가가치, 그리고 사람의 진정성, 외국의 아류가 아닌 한국 와인의 정체성이 가치소비를 즐기는 소비자에게 본질이 알려져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와인 맛에 취향은 있지만, 기준은 없다는 것. 이제는 우리 농산물로 빚은 한국 와인이 농업의 가치를 더욱 알려주기를 기대해 본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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