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신호
바이든, ‘무력 사용’도 검토 착수한 듯

지구상에 그동안 없었던 ‘나라’ 두 개가 새롭게 탄생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독립’을 선포한 직후 러시아에 의해 정식 ‘국가’로 승인을 받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그리고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향후 1년을 못 버티고 러시아에 합병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각에선 ‘동유럽판 만주국’이 되는 것 아이냐는 조소도 나온다. 미국은 DPR과 LPR을 주도하는 세력을 러시아의 ‘괴뢰’, ‘꼭두각시’로 규정하며 경멸감을 드러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필요 시 한층 더 나아간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해 러시아를 상대로 경제제재는 물론 무력을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임을 내비쳤다.
22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는 둘 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러시아계 주민이 많이 살고 자연히 친(親)러시아 성향이 짙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크림반도를 강제로 빼앗은 뒤 이들 지역 주민들은 “우리도 우크라이나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며 반군을 조직해 정부군과 대립해왔다.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10만대군을 배치하며 전운이 감돌자 이들 반군과 우크라이나군 간에 교전이 벌어져 숱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DPR과 LPR이 ‘국가 선포’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두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즉각 인정하겠다”고 결정했다. 이어 DPR 및 LPR 대표들과 만나 러시아까지 더해 ‘3국’의 우호·협력·상호원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방부를 향해 “DPR과 LPR의 안보 및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평화유지군(PKF)을 편성해 언제든 진입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DPR과 LPR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지역은 국제법상 엄연히 우크라이나 영토인 만큼 러시아군이 해당 지역에 진입하는 순간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범한 것이 되어 전쟁 발발이 불가피해진다.

많은 전문가들은 ‘독립국’을 자처하는 DPR과 LPR이 1년도 못 가 러시아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본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한테 크림반도를 강탈한 것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친러 반군이 ‘크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세워 독립을 선포하자 러시아가 군대를 보내 이를 엄호했다. 크림공화국은 곧장 러시아와의 국가통합 준비에 착수했으며, 이듬해인 2015년 1월 모든 절차가 완료돼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일부가 됐다.
일각에선 DPR과 LPR이 제법 오래 존속하더라도 ‘동유럽의 만주국’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웃는다. 1932년 일본이 중국의 만주 지역을 점령한 뒤 세운 만주국은 1945년까지 13년간 존속하긴 했으나 ‘일본의 괴뢰, 꼭두각시 정권’이란 인식이 워낙 강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독립국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일본의 동맹인 독일·이탈리아, 그리고 파시즘과 유사한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갖고 있던 스페인·헝가리·폴란드 정도가 만주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맺었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국은 만주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장 미국은 DPR과 LPR에 혐오감을 드러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두 집단의 정식 명칭을 부르는 것조차 거부하며 “소위 공화국들(so-called republics)”이란 표현을 썼다. 아무리 공화국을 자처해도 정식 국가로 인정할 뜻이 전혀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 두 집단이 “러시아의 대리인들(proxies)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고도 했다. DPR 및 LPR의 지도자로 행세하는 인물들이 실은 러시아의 괴뢰,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를 상대로 고강도 경제제재에 더해 ‘플러스 알파’를 추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를 발표한 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을 가속화한다면 우리도 필요 시 한층 더 나아간 조치(further steps as necessary)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경제제재+알파’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해 온 바이든 대통령이 무력 대응 카드도 꺼내들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