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잔디(가명)씨가 또 한번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러 나왔다. 지난 달 20일 출간한 책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사진)를 통해서다. 사건 당시부터 최근 서울시청에 복귀하기까지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로 살아낸 468일의 기록을 생생하게 담았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욕도 하면서 글쓰기로 마음을 다스린 시간. 성폭력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거나 자신에게 연대하는 여성들을 보며 몸은 침대에 누워만 있었지만 마음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세상은 그를 또 한 명의 ‘미투’ 고발인으로 바라봤고, ‘피해호소인’이라는 전무후무한 용어까지 쓰며 가혹하게 대했다. 김씨는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는 미투 공론화를 한 것이 아니라 잘잘못을 바로잡고 피해를 구제받기 위한 법적 절차를 진행했을뿐”이라고 말해 왔다. 인정하기 힘들었던 피해를 직면하고, 스스로의 회복을 위해 선택한 첫 번째 단계가 성폭력 고소였다. 고소 사실이 미리 유출되지 않았다면, 박 전 시장이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면 ‘치유와 회복의 길’은 지금처럼 멀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책 발간은 지난 해 3월 취재진 앞에서의 기자회견, 시청 복귀에 이어 그가 세상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자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 쓴 결과물이다. 책 뒷 표지에는 “나와 가족들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있는 힘 다해 글을 썼다”고 돼 있다.
김씨를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에서 만났다. 그의 법적 조력자인 김재련 변호사가 동석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대부분 밝고 담담히 답변하던 김씨는 두 번 눈물을 터뜨렸다. 이제는 저 멀리 달아나버린 예전 일상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며, 그리고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박 전 시장의 죽음을 언급하면서다.
하지만 김씨가 쓴 책도, 인터뷰도 마냥 어둡고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그에 따르면 현재까지 회복된 30%가량의 일상 속에는 생각지 못한 동료·시민들의 응원, 함께 비슷한 길을 걸으며 “비록 과정은 힘들지만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들과의 연대가 있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을 구체적으로 그릴 만큼 에너지가 채워지진 않았지만 김씨는 “주어진 인생에 만족하기보다 인생을 누구보다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즐기며 살 것(p.233)”이라고 다짐한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주요 내용.
◆글쓰며 견딘 시간…‘김지은입니다’ 영향 커
-책 출간 이후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적어도 책 쓴 의도에 대해 공격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출판사에서 ‘출판금지 가처분’ 대응을 준비할 정도였다. 긴장된 마음이었는데 조용하게 지나가서 다행이다.
책을 냄으로써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야기하지 못했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출판을 계기로 연락 못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났는데 ‘그때 고소를 말리고 싶었는데 말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을 들었다. 시장실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직원들도 이 책을 읽고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을 잘 쓴다’고 밝게 말해준 지인들도 많았다.”
-언제 처음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나.
“글 자체를 처음 쓴 거는 첫 ‘피해자 말하기’ 기자회견 때다. 이때 글쓰는 게 정신적으로 정리하는데 좋다는 걸 깨달았다. 가끔 일기처럼 메모를 했다. 엄마랑 둘이서 함께 겪은 일을 각각의 시각으로 엮어보니 기록의 의미로 재밌겠다 생각했다. 출판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은 직장 복귀를 결정하면서 그동안의 일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2021년 5월쯤부터 출판을 준비했다.”
-글 쓴 분량은 어느 정도 됐나.
“책으로 200페이지 정도 됐을까. 어머니도 100페이지 정도를 썼고 김재련 변호사님도 그 정도 썼다. 2020년 12월 영화 ‘세 자매’를 변호사님과 봤는데 ‘세 여자’ 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세 명이 어떻게 보는지 입체적으로 묶어보자고 했다. 출판사에서는 단독으로 구성하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나왔다.”
-글을 쓰면서 ‘치유의 힘’ 같은 걸 느꼈을까.
“그렇다. 출판되지 못한 꼭지 중에 종이 1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욕으로 도배했던 것이 있다. 글은 응어리 진 감정을 풀 수 있는 의미 있는 해소방법이었다. 적다 보면 울기도 하고 욕도 하면서 마음도 정리가 된다. 다만 안 좋은 점은 그 글을 다시 읽을 때 너무 사무친다는 것이다.”
-출간 후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교보문고에 책이 몇 권 남았나, 얼마나 팔렸나 계속 세어봤다. 댓글도 보고 후기 써주시는 것도 봤다. 대중매체에 기사가 나가면 불특정 다수에 노출되니 저에게 안 좋은 말 하는 사람도 많은데 책은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본다.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서는 적어서 좋았다.”
-박원순 사건 이후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된 ‘김지은입니다’의 영향도 책 내는 데에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영향을 엄청 많이 받았다. 사건 초기부터 변호사님과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님으로부터 책 쓰라는 제안을 받았다. 저는 거의 죽으려고 하는데 무슨 책을 쓰라는 건가 이런 생각이었는데, 김지은 선생님은 휴지에도 메모를 쓰셨다고 하더라. 그 책을 힘들게 다 읽어 내면서 저와 같은 일이었던 것으로 공감이 됐다.
그 분이 그렇게 용기 내서 사회에 균열을 내주신 덕분에 저도 ‘이 세상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꼭지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두 꼭지를 할애해 김지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았다.”
-출판사 찾는 데 우여곡절은 없었나.
“몇 군데 컨택했지만 그곳들과는 잘 안 됐다. (김재련 변호사: 한 대형 출판사는 직원들은 내자고 했는데 대표가 반대했다고 들었다.) 다른 한 곳은 제가 직장 복귀한 이후의 과정을 담고 싶다고 했다. 근데 복직하고 많이 힘들었다. 1년 4개월 정도 침대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사람들 만나고, 약을 먹으며 일해야 하니 쉽지 않았다. 제가 책을 쓰려 했던 건 괴로운 일을 겪었음에도 잘 살거라는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던 마음인데 힘들다는 내용만 쓸 수가 없었다. 정철승 변호사도 괴롭히던 시기였고.
좌절감이 커지며 글을 못 쓰고 있다가 연말이 다가왔고 이제는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출판사를 소개받았다. 지금 출판사(천년의상상)에서는 현재 원고로 빠르면 한 달 안에 출판이 가능하다고 하셔서 진행하게 됐다.”
◆‘피해호소인’ 논란 그리고 페미니즘
-책 제목에도 ‘피해호소인’을 넣었고, 이 충격적인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호소인이라. 그냥 좀 어리둥절했다. 처음 듣는 단어를 해석할 때는 맥락이 중요하지 않나. 그 맥락이 제가 겪은 일을 부정하고, 저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단어였음을 확신했다.”
-그 단어를 다른 곳도 아닌 피해자가 다니는 직장, 서울시청에서 사용했는데.
“시청에서 그 단어를 썼다는게 분노스러웠다. 보호받을 위치에 있는 직원을 향해 그런 단어를 썼다는 게. 윗선에서 지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고민과 합리적 판단을 했어야 한다. 너무 정치권에 영향을 받은게 명백하게 보이니까 후배로서 안타까웠다. 그 이후 어쨌든 오세훈 시장님이 공식 사과하셨고 복귀에 신경 써주셔서 서울시가 저에게 준 상처는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젠더특보와는 직접 소통도 하셨는데, 고소 사실 유출 경로(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로 확인되었다.
“고소 사실 유출 경로를 검찰이나 경찰 보고라인에서 그랬나보다 정도로 생각하다가 2020년 12월 30일에 검찰 발표를 보고 너무 놀랐다. 그 3명만 검찰 발표 전에 양심선언 해 줬으면 제가 그렇게 무자비한 ‘꽃뱀’, ‘기획미투’ 공격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본인이 대책회의도 하고, 피해호소인이란 말을 사용하며 여론을 몰아갔던 건 아직도 소름끼친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떤 가치와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을까 끔찍하다.
서울시 젠더특보라는 자리는 박 전 시장이 만들었는데, 시장님의 ‘성(性)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서울시 정책 전반의 성평등 가치를 반영하려고 만든 자리다. 여성단체 출신의 국회의원 자리는 그쪽 진영의 사람이 사건에 휘말렸을 때 지위를 이용해서 보호하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 여성, 절대적 약자인 피해자 보호를 통해 좀 더 성평등한 나라를 만들라는 의미로 그 분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했다고 생각한다. 두 자리의 의미,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개인적인 친분과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했던 선택에 대해 많이 안타깝다.”
-책에 보면 이 사건 이전에는 페미니즘에 별 관심이 없었다가 사건 이후 여성 연대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썼다. 그러나 동시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졌을 것 같다.
“저는 그 사람들(고소 사실을 유출한 3인)이 말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저보다 훨씬 더 페미니스트인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타락한 페미니스트’라고 하신다. 페미니즘의 의미를 훼손시키고, 왜곡하고, 퇴행시켰기 때문이다.”
-최근 김건희씨의 ‘미투 폄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미투의 근본은 피해자의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도 이런 일을 당했다’고 응원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미투라는 움직임을 왜곡하고 잘못 받아들이는 상황이 아쉽다. 피해자는 이미 인간다움, 자존감이 굉장히 무너져 있는 상태다. 육체든 정신이든. 그런 사람한테는 좋은 말도 상처가 될 수 있다. 피해자한테는 조금 더 사려 깊은 이야기를 해 줬으면 한다. 시선도 조금 더 따스하게.”
-이번 대선에서 여성 유권자가 지워졌다는 우려가 크다. 정치권의 여성혐오적 행보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민주당은 자기들이 과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보니 그 부분에서 잘 하겠다고 말을 못하는 상황이다. 국민의 힘은 여성이나 성평등 가치에 대해 깊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해 보궐선거 이후로 ‘이대남’ 눈치를 양당이 보는 상황이 더해지면서 정책적으로 조금이라도 여성과 관련된 말이 나오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난다. 예민하게 반응하다 보면 극단적으로 여성가족부 폐지까지 화두를 던지고.
여성 정책은 남성과 분리될 수 없는 부분이다. 본인의 여자친구, 아내, 여동생 등 가족 중에도 여자가 많다. 여성을 위한 정책이 남성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자극적인 ‘무고죄’ 같은 이슈만 언급되고 있어 회의감이 든다.”
-여성 직원에게 ‘돌봄노동’을 기대하는 성차별적 문화도 책에서 비중 있게 다뤘다.
“사적 노무나 돌봄노동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인 구분,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개인의 판단 영역으로 남겨두기에는 모호한 부분이고 위험하다. 새롭게 사회로 유입되는 MZ세대들과도 갈등과 대립이 생길 것 같다. 예전에는 50∼60년 지속되던 관행들이 이제는 5년만 지나도 내부 규칙과 감성이 바뀐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30∼40년 전 기준으로 사는 건 서로에게 힘들고 피곤하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 생각이 있으면 사적인 것을 시키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절대 당당하고 떳떳한 일은 아닌데 그 구분이 아예 없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정치권에서 주로 일어난다. 임명을 의원이 결정하는 의원실 보좌관들은 개인적인 일을 노비처럼 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권에 있다가 기관으로 온 분들은 그런 문화에 익숙하다. 제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 돌봄은 원래 도움이 필요한 위치에 있는 취약계층이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더 힘이 있는 사람이 돌봄을 받으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 사건 이후의 삶
-성범죄 사건이 생기면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대를 한다. 잔디님의 일상은 퍼센트로 얼마나 돌아왔나.
“(잠시 고민하다가) 일상으로 35~40% 돌아왔다. 제가 느낄 때 10~20%는 아예 깎여서 회복되지 못할 수치다. 인생에서 계속 갖고 가야 할 상처다. 원래는 되게 꿈도 많고 하고싶은 것 많고 에너지 많은 사람이었다. 퇴근하면 매일 친구를 만났고, 돌아와서 전화영어나 수영을 하고, 자기 전까지 인터넷 쇼핑을 하고 그랬다. 근데 지금은 진짜 하고 싶은 게 없다. 하고 싶은 마음도 힘도 없다. 지금 당장은 하루 하루 살아내는 기분이다.
제가 ‘이 정도면 일상을 회복했다’고 할 만한 기준을 생각해봤다. 저는 밝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인사를 잘한다. 특히 출근할 때 게이트 방호주임들과 다 친해서 인사를 하면서 지나갔었다. 그러면 문도 다 열어주시고 그러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사실 저를 알아보실까봐 조마조마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간다. 언젠가는 그 분들과 웃으면서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책에서 직장 복귀에 대한 두려움이 써 있는데 실제로 돌아와 보니 어땠는지.
“복귀 후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은 시기에 조금씩 연락이 왔다. 동기들이나 같이 전에 일했던 직원 분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느꼈다. 그 분들도 이전에 겪었던 자신만의 힘들었던 사정들을 말해주었다. 그런 힘든 일을 겪고도 다들 살아낸 것이구나 했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버텼다.”
-동료들이 연락을 해 줄 것이라 예상했는지.
“생각도 못했다. 이름도 번호도 바꿔서 통로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전 계정으로 계속 연락주는 직원 분도 계시고, 그 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신 분들도 있다. 응원받을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받았다. 사실 저라도 연락 못할 거 같다, 미안해서. 정말 힘들 때 연락 못했으니까.”
-이 사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보며 어떤 감정이었는지.
“이 일 겪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감정은 ‘세상이 미친 것 같다’, ‘비정상적이다’라는 것이다. 적어도 본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지켜온 가치와 기준에는 걸맞게 저를 대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말도 안되는 단어와 상황들로 저를 그렇게 공격하고 상처를 주는게 좀 뭐라고 할까. 특히 사회지도자, 권력자들이 유독 저에게 이러는가 하는 울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겪으면서 모두가 배워가고 있다. 세상과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미숙하다. 경험이 있는 분들은 캐치하고 따라오지만 도태되는 분들이 계신 거다. 그 일부가 출판사 대표들이다. 그들은 다 남성들이다. 이 책을 편집하시면서도 새롭게 알게 되는 감수성이 있다고 하시더라.”
-힘든 시간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무엇이었나.
“정말 누워서 핸드폰만 보면서 오래 살았다. 저의 이야기뿐 아니라 불편한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는 기사들을 보며 많은 힘을 얻었다. 이것은 피해자들이 낸 균열에 계속 새 부리로 쪼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사들에 달린 악플을 보면 저도 감정이입하고, 이렇게 욕 먹고 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도 용기를 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저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도 하고, 성폭력 관련 웹툰과 기사 댓글을 보며 사람들의 생각도 살펴본다. 그러면서 침대에만 누워 있는 동안에도 조금씩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저의 희망과 의지를 봤다.”
-조금 힘들 수 있는 질문이지만 가해자의 죽음에 대해 ‘속죄’라고 하는 사회적 시선이 여전하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하며 좀 많이 울었다. 가해자의 죽음은 사실 제가 아직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역이다. 아까 말한 절대 치유되지 않는다고 한 부분이다. 이미 제가 겪고 있던 사건으로 남겨진 상처만 해도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거기서 더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전쟁터에 내몰린 기분이었다. 왜냐면 제가 가만 있으면 그 일은 없던 일이 되고, 꽃뱀이나 무고로 기획미투 한 사람이 되어 사회적으로 거의 모든 걸 잃게 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과 존엄을 잃은 상황에서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은데 나의 모든 피를 다 빨리는 느낌. 그렇게 망자를 상대로 한 싸움이 이길 수도, 얻을 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이걸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이것을 그 분이 만든 것이다.
‘속죄’라는 표현?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안했지 않나. 어떤 말도 없이 그렇게 가셨고, 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그 분의 선택에 대해서 계속 의문을 갖고 자기만의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니는 과정이 너무 괴로웠다. 그 중에서도 저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혼자 생각하거나 누군가와 이야기 할 때도 마음 놓고 원망을 못 했다. ‘착한사람 콤플렉스’일 수도 있고, 꽃뱀 프레임이 무서운 것도 있고. 저를 비난하는게 어떤 이유가 됐든 너무 무서워서. 그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모습밖에 보여줄 수 없었다. 저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하는 원망의 마음. ‘저 사람은 죽었잖아. 뭘 더 바래’라고 말을 할 때 저에게는 해소되는 게 없고 더 힘들기만 한데 그만하라는 게 또 다른 폭력으로 느껴졌다. ‘내가 죽는거 밖에는 답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정신과 선생님께도 이상해서 물어봤다. 왜 나를 괴롭힌 사람인데 내가 계속 슬퍼하고 꿈에 나오는지. 가해자라도 그 사람이 사망을 하면 애도의 기간이 어쨌든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정신과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사람이 느끼는 최소한의 망각 기간이다. 3년이 지나면 원망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성폭력 고소를 결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저는 (미투보다) 성폭력 고소가 더 깔끔하고 저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고소라는 건 사실로 싸우는 것이니까. 좋은 조력자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과정에서 좀 힘들긴 한데 상담받으면서도 기법으로 사용하시는 말씀은 ‘하고 싶지 않으면 멈춰도 된다’이다. 사람은 다 선택할 수 있다. 고소하기로 결심했다가도 그만둘 수 있고 진행하다가도 멈출 수 있고. 순간 순간 뭐든 원하는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의 인간다움, 존엄의 회복에 도움이 많이 됐다.
성폭력 피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는 것으로 피해자가 주체적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침해당했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뭐라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회복의 방법이었다.”
-요즘 ‘부캐’가 유행인데, 작가로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계속 활동하는 것은 어떤가.
“사실 출판사 대표님께서 처음 원고를 보시고 2년에 한 번씩 책을 내자고 하셨다. 제가 ‘2년에 한 번 이 정도 일을 겪으란 말이냐’ 했더니 시, 여행책, 요리책 상관 없이 뭐라도 쓰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버겁다. 하루 살기도 벅차서. 근데 ‘부캐’라는 단어 보고는 그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캐가 지금은 슬프고 안쓰러운 이미지라서 그 안에서 해야 될까, 아니면 본캐가 정신을 차리고 해야 될까. 혹은 또 다른 부캐를 만들어야 될까 차차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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