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헌 男1500m 레이스 금빛 질주
심석희 고의 충돌 의혹 최민정도
마지막 경기 女1500m서 금메달
실수 극복한 피겨 男싱글 차준환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성적 5위에
女싱글 유영·김예림도 부상 딛고
역대 첫 동반 ‘톱10’ 진입 새 역사

“장애물을 만났다고 반드시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면 돌아서서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하면 벽에 오를지, 벽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또는 돌아갈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라.”
쇼트트랙 국가대표 황대헌(23·강원도청)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심판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실격당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남긴 글이다. 미국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어떤 난관이 닥쳤을 때 굴하지 않고 도전하라며 한 말로, 황대헌도 편파판정이라는 벽을 넘어서겠다는 각오였다. 그 의지 그대로 황대헌은 베이징 대회 1500m에서 9바퀴를 남기고 선두로 치고 나가 1위로 질주하며 기어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나선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이런 도전 의지는 황대헌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대회를 앞두고 부상과 함께 심석희 고의 충돌 의혹 사건까지 불거지며 힘든 상황에서 출전했던 여자 쇼트트랙의 최민정(24·성남시청)은 두 개의 은메달로 아쉬움을 남기는 듯했지만 마지막 여자 1500m 레이스에서 기어이 우승을 차지하며 활짝 웃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은메달을 땄던 차민규(29·의정부시청)는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장비 문제로 고생하며 부진했지만 굴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나서 두 대회 연속 메달이라는 귀중한 성과를 일궜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의 정재원(21·의정부시청)은 4년 전에는 맏형 이승훈을 돕는 ‘페이스 메이커’였지만 이제는 당당히 자신이 주역이 돼 은메달을 가져왔고, 여자 매스스타트의 김보름(29·강원도청)은 평창에서의 왕따 주행의 억울함을 씻고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5위로 레이스를 마치기도 했다.
여기에 피겨 남자 싱글에 출전한 차준환(21·고려대)은 한 차례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음에도 강한 정신력으로 나머지 연기를 깔끔하게 처리하며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인 5위에 올랐다. 또한 여자 싱글의 유영(18)과 김예림(19·이상 수리고)은 부상 등 여러 어려움을 뛰어넘어 각각 6위와 9위를 차지하며 나란히 ‘톱10’에 진입하며 역대 최초로 두 명의 한국 선수가 여자 싱글에서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는 새 역사를 썼다.
이렇듯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선수들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나타난 모습은 힘든 일이 닥쳤다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이를 떨치고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당당하고 건강한 태도였다. 지난해 도쿄 하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경기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면, 이번 베이징에서 나타난 선수들의 자세는 MZ세대가 나약한 젊은이가 아닌 도전정신에 빛나는 청춘들로 앞으로 사회를 짊어질 만하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도전정신은 메달리스트들처럼 주목받은 선수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여전히 불모지에 가까운 종목들에서 묵묵히 아름다운 질주를 이어간 선수들도 많았다. 스켈레톤 정승기(23·가톨릭관동대)는 12위에 그친 간판 윤성빈을 뛰어넘어 10위에 이름을 올리는 선전을 펼쳤다. 준준결승에서 0.01초 차로 패해 5위에 그쳐 금메달의 꿈을 놓쳤던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의 이상호(27·하이원)도 아쉬움은 있어도 좌절은 없었다.
여기에 루지·노르딕복합·바이애슬론·스노보드·알파인스키·크로스컨트리스키·프리스타일스키 등에 출전해 하위권 성적에 그쳤어도 이들이 보여준 열정과 도전정신은 메달 못지않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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