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시대·상황따라 변하는 우리말의 숨은 이야기

입력 : 2022-02-19 03:31:00 수정 : 2022-02-19 06:19:05

인쇄 메일 url 공유 - +

조항범/태학사/1만7000원

우리말 어원 사전/조항범/태학사/1만7000원

 

말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필요에 따라 탄생, 소멸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말의 변천사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해 다른 의미로 쓰이고, 말이 형성된 이유를 따져보면 우리 조상들이 당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책 ‘우리말 어원 사전’은 평소에 의식하지 않고 써오던 단어들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내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초점을 뒀다.

이를테면 가족 호칭 중 ‘누나’라는 말은 19세기 이후 문헌에나 나타나는 새 낱말인데, 초기에는 지금과 달리 손위는 물론이고 손아래 누이(여동생)도 모두 ‘누나’라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호칭법은 20세기 초까지도 이어졌지만 현재는 그 적용 범위가 축소된 것인데, 손아랫사람에 대한 예법이 퇴색하면서 ‘누나’라는 말에도 의미 변화가 일어났다. 또 ‘동생’과 ‘아우’도 원래는 서로 다른 개념이었다. ‘동생(同生)’은 16세기에는 한자 뜻 그대로 ‘함께 태어난’이라는 의미였기에 ‘동생아우’라 하면 ‘한배에서 태어난 아우’ 곧 ‘친아우’를 가리켰고, ‘동생형’이라 하면 ‘한배에서 태어난 형’ 곧 ‘친형’을 가리켰다.

우리말 어원을 살펴보다 보면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말미잘’은 1950년대 이후 문헌에서 발견된다. 말미잘은 ‘말미주알’에서 줄어든 어형으로 추정되는데 ‘미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가리킨다. 앞의 ‘말’은 동물 ‘말’을 의미하므로 ‘말미주알’은 말의 항문으로 해석된다. ‘말미잘’의 구반 가운데 있는 입이 마치 ‘말의 항문’과 같은 모습에서 기원한 것이다.

‘등신’은 본래의 긍정적 의미를 잃고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만 남은 대표적 단어다. ‘等(등)’이 ‘같다’의 뜻이므로 ‘等神(등신)’은 ‘신과 같음’의 뜻을 함축한다. 이는 사람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신상(神像)을 가리킨다. 따라서 ‘등신’은 처음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귀신’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부정적 의미로만 쓰이는 등신은 아마도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들어진, 실체가 없는 사람의 형상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 책은 평생을 우리말 어원 연구에 바친 국어학자 조항범 교수가 ‘말’의 다채로운 역사를 대중을 위해 쉽고 편한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 우리 말글살이를 10개의 범주로 나눠 200개의 낱말을 가려 뽑아 엮었다. 각 낱말의 어원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친족 낱말의 어원까지 이해를 확장한다. 또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근거 없는 어원설을 바로잡는 데도 공을 들였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박보영 '상큼 발랄'
  • 박보영 '상큼 발랄'
  • 고윤정 '매력적인 미모'
  • 베이비돈크라이 이현 '인형 미모'
  • 올데이 프로젝트 애니 '눈부신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