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얄타의 딸들/캐서린 그레이스 카츠/허승철 옮김/책과함께/2만8000원
1945년 2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자 연합국의 ‘3거두’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 이오시프 스탈린은 전쟁 종식에 합의하고 전후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얄타회담을 열었다. 8일간 진행된 얄타회담은 20세기 전후 세계질서를 만들고 냉전의 포문을 열었지만 역사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낸 당시의 분위기와 내밀한 이야기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 회담장에는 세 명의 또다른 주요한 인물이 있었다. 처칠의 딸 사라, 루스벨트의 딸 애나, 소련 주재 미국 대사 애버럴 해리먼의 딸 캐슬린이다. 세 딸들은 3국 사이에 벌어진 협상에 직접 참여하거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회담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회담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상세히 기록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로 전하거나 개인 수기에 남겼다. 역사가인 캐서린 그레이스 카츠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신간 ‘얄타의 딸들’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숨 가쁘게 전개되는 8일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세 딸들은 각자의 성격과 역할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아버지를 조력했다. 종군기자이자 스키 챔피언이었던 캐슬린은 독립적이고 당찬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한 캐슬린은 얄타회담장을 꾸미고 참석자의 자리 배치와 의전 등을 진두지휘하고, 회담장에서 일어나는 세부사항을 결정해 나갔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영국 공군에 입대해 항공사진 판독 소대장으로 지내던 사라는 기민한 기질로 아버지 처칠을 보좌하며 정치적 결정에 영감을 줬다. 유럽에서 영국의 위상과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한 책임감으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던 처칠은 회담 기간 사라에게 심정적으로 상당히 의존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신문 편집자이기도 했던 애나 루스벨트는 당시 급성 울혈성 심부전 진단을 받았던 아버지의 건강상태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회담에 참석했다. 얄타회담의 성패는 대통령의 외교와 사교술에 달린 만큼 아버지의 건강 문제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책은 회담이 이루어졌던 리바디아 궁전의 열악한 위생상태, 회담을 둘러싼 소문들, 3거두를 비롯한 정치인들 사이의 외교적 역학 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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