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생, 높은 수학점수로 대거 교차지원
인문계열 정시 최초 합격자의 44% 차지
서울대 “2023학년도 정시선 교과평가”
진로·전공 관련 학업 수행 충실도 반영
2023년 이과생 교차지원 소폭 감소 전망 속
문과생 수학 선택과목 고민 깊어질 듯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이 현실로 드러났다.”
2022학년도 정시 합격자가 발표되자 학원가에서 나온 반응은 이랬다. 지난해 처음으로 문과와 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이과생들이 교차지원으로 문과생의 자리 상당수를 차지했다는 결과가 명확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20일 국회 교육위원회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학년도 서울대 정시에서 교차지원이 가능(인문·사회·예체능 계열)한 일반전형 모집단위 최초 합격자 486명 중 216명(44.4%)은 수능 수학영역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이나 ‘기하’를 골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합격자의 44.4%가 문과에 교차 지원한 이과 합격자라는 의미다. 여기에 자유전공학부는 37명 중 35명, 심리학과는 9명 중 8명이 이과생이었다.
◆문과 자리 차지한 이과
서울대뿐만 아니라 서울의 다른 상위권 대학에서도 ‘문과 침공’이 이뤄졌다. 종로학원은 2022학년도 정시에서 이과 수험생이 교차지원으로 문과생의 자리를 차지한 다수의 사례를 확인했다. 국어와 수학, 탐구 두 과목으로 산출한 백분위 점수(300점 만점) 기준 291.0점을 받은 이과 학생은 고려대 데이터과학부에 진학하지 않고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를 선택했다. 또 백분위 282.5점의 한 수험생은 서울시립대 컴퓨터과학부나 건국대 스마트ICT융합공학과 진학을 포기하고 고려대 통계학과에 입학했고, 한 신입생은 경희대 수학과 커트라인인 백분위 281.0점을 받고 연세대 신학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건국대 수학과나 동국대 화공생명공학과 합격선인 276.5점으로 경희대 간호학과와 이화여대 간호학부 합격 통보를 받은 수험생들도 나왔다. 숭실대 전기공학부나 세종대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는 백분위 272.5점으로 연세대 사회학과에 진학한 사례, 또 경기대 전자공학과 합격 문턱인 248.0점으로 경희대 무역학과에 진학한 사례 등도 확인됐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통합수능 2년 차에서도 이과가 유리한 현상은 이어질 것”이라며 “문과생들이 어떤 수학에서 선택과목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통합수능서 문과가 약한 이유는?
이처럼 이과생들이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 것은 2022학년도에 처음으로 치러진 문·이과 통합형 수능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이번 수능은 ‘공통과목+선택과목’ 구조로 출제됐다. 희망하는 진로에 따라 필요한 과목을 선택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에서 자연계열 입학 필수 과목으로 미적분이나 기하를 지정한 반면 문과생들에게는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과생들은 상황에 따라 인문계열 학과에 지원할 수 있지만, 문과생들은 자연계열 학과에 지원할 엄두를 못 내는 셈이다.
특히 수학의 경우 평가방식이 달라지면서 이과생이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2021학년도까지는 문과와 이과의 수학 시험지가 달랐다. 문과생들은 수학 나형, 이과생들은 수학 가형을 풀고 성적 역시 문과생은 문과생들끼리, 이과생은 이과생들끼리 경쟁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통합수능 도입으로 수학에서 학생들은 문과와 이과 구분 없이 1번부터 22번까지 공통과목을 풀고, 나머지 선택과목 8문제를 해결한 뒤 문·이과 학생들이 한꺼번에 성적을 받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응시집단별 공통과목 점수를 고려해 선택과목 점수를 보정했다. 하지만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이과생이 확률과통계를 선택한 문과생보다 성적이 높다 보니 등급과 표준점수에서 앞섰다.
◆대학도 학생도 깊어지는 고민
이과생들의 교차지원은 2023학년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학들도 고민에 빠졌다. 서울대는 2023학년도 정시부터 교과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학습발달상황을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서울대는 교과 이수 현황과 교과 학업성적 등을 반영해 모집단위 관련 학문 분야에 필요한 교과 이수와 학업 수행의 충실도를 평가할 방침이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서울대가 교과평가를 반영하기로 하면서 2023학년도 정시에서 교차지원 비율이 다소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며 “사회 교과 이수단위가 상대적으로 적은 자연계열 학생이 교과 이수 현황의 불리함을 안고 인문계열 모집단위에 지원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과 수험생들은 수학 선택과목을 확률과통계가 아닌 미적분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수능이 3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모험이 될 수 있지만 문과생들이 수학에서 평가를 낮게 받게 되면서 역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임 대표는 “3월 첫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른 뒤 선택과목별 점수 추정치가 나오면 학원가에서는 문과생들을 위한 ‘미적분 단기 완성반’이 개설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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