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북아시아를 겨냥한 일본의 무력 증강이 한층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본토 방어에만 무력을 사용한다’는 전수방어 원칙을 겉으로나마 존중하던 모습은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공세적 군사력 운용을 꿈꾸던 일본의 야심에 불을 붙이고 있다. 미사일 위협이 예전보다 더 강해진 상황에서는 방어 위주의 작전이 한계가 있는 만큼 적 기지 공격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 기지 공격에 필요한 정밀유도무기 확보와 더불어 유사시 반격 작전 개념 수립 등의 철자가 이어지면, 동북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더욱 확대될 위험이 있다.
◆‘북한 미사일 대응’ 앞세워 ‘전수방위’ 허물어
한반도 유사시 선제공격에 필요한 전력 구축에 한국은 별다른 제약이 없다. 반면 일본은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방어 위주의 전력과 작전개념을 유지해왔다. 실제로 일본 자위대 전력 중 장거리 공격력을 갖춘 무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같은 기조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북한이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고강도 무력시위를 감행했을 때였다.

북극성-2형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등을 쏘면서 사정권을 동쪽으로 확장하던 북한은 같은해 8월과 9월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정상각도로 쐈다. 이때 발사된 화성-12형은 일본 열도를 가로질러 북태평양에 낙하했다.
2019년에 등장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요격시도를 회피하는 풀업기동(하강 도중 재상승) 능력을 갖췄다. 지난해 9월부터 시험발사된 극초음속미사일은 기존 미사일보다 훨씬 우수한 속도와 기동성으로 요격망을 피해 지상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과시했다.
현재 일본은 이지스함에 탑재된 이지스 레이더와 SM-3 함대공미사일이 해상에서 1차로 미사일을 요격하고, 이를 돌파한 미사일은 지상의 패트리엇(PAC-3)으로 파괴하는 형태의 미사일방어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 등에서는 “북한 미사일 성능이 향상되면서 미사일방어망으로도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반격을 가해 적 기지를 타격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퇴임을 5일 앞둔 2020년 9월 11일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를 포함, 새로운 미사일 방어 대책을 마련하도록 당부하는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코로나19 대응 등에 집중하면서 관련 논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스가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지난해 10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전략 문서를 1년 이내에 개정하면서 적 기지 공격 능력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적 기지 공격 수단으로는 적군의 공격 범위 밖에서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사용하는 스탠드오프(stand-off)가 거론된다.
이를 위해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를 개량, 사거리가 1000㎞에 이르는 미국 록히드마틴 JASSM-ER을 장착할 예정이다. F-35A 스텔스 전투기에는 노르웨이 콩스버그가 개발한 사거리 500㎞의 JSM을 탑재한다.
일본이 자체 개발한 12식 지대함 미사일을 개조해 사거리를 200㎞에서 1000㎞ 이상으로 늘리는 계획도 추진중이다.

멀리 떨어진 곳의 표적을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장거리 순항미사일로 타격하는 것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적 기지 공격 능력에 해당한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이 정찰위성,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과 결합하면 ‘일본판 킬 체인’이 등장하게 된다.
감시정찰자산과 요격체계, 공격용 유도무기가 모두 갖춰지면서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감행할 능력도 확보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고, 일본 내에서도 군비 경쟁을 격화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준비는 이미 진행되는 모양새다. 남은 것은 정치적 결정과 전략 및 작전개념 수립뿐이다.
이렇게 되면 1948년 평화헌법 제정 이후 일본의 핵심 안보 정책이었던 전수방위는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동북아 분쟁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 우려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는 자위대 구조와 전략, 작전은 물론 일본 정부의 국방정책을 강경 기조로 바꿀 잠재력을 안고 있다. 스탠드 오프 방식의 한계 때문이다.
항공기 탑재 스탠드 오프 장거리 순항미사일은 일본이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이 가능한 전력이다. 기술적 검증이 이뤄진 F-15, F-35A 전투기와 JASSM-ER, JSM을 체계통합하는 작업은 리스크를 낮추면서 전략적 타격력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탄도미사일보다 느린 속도로 낮게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은 지상 요격 시도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일본의 적 기지 공격은 북한을 대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러시아산 S-300 계열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지대공미사일체계를 개발했다. 기존 SA-2보다 성능이 월등히 향상됐을 가능성이 높다.
수천 개에 달하는 지하시설이나 미사일 이동식발사차량(TEL)은 순항미사일로 타격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북한은 초고강도 콘크리트 등을 사용해 내폭성이 강한 지하시설을 다수 건설했다. 일본 열도를 위협하는 화성-12형과 북극성-2형을 비롯한 미사일과 방사포는 대부분 트럭에 실린 채 이동, 발사된다.
일본이 순항미사일의 한계를 넘어서서 더 강력한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를 시도한다면, 독자적인 군비 증강 또는 미국과의 연합작전 강화 등의 방법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항공우주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액체연료 로켓은 물론 고체연료 로켓도 쏘아올린 경험이 있다. 이를 토대로 사거리 1000㎞ 이상의 탄도미사일이나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정찰위성이나 무인정찰기 감시를 피해 숨어있다가 이동식발사차량을 기습 전개, 미사일을 쏘는 북한의 전술에 맞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시정찰 능력과 정보공유 속도를 더욱 높이고, 미사일의 정밀도와 파괴력도 강화해야 한다. 이는 거액의 예산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미군과의 연합작전은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미군이 공격을 주도하고 일본은 순항미사일을 통해 제한적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년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탈퇴한 이후 중거리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마크 에스퍼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은 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은 독자적인 탄도미사일이 있고, 호주는 배치를 꺼린다. 공격력이 매우 부족한 일본이 후보지로 거론되는 대목이다.
미국이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 일본은 주일미군과의 지휘체계 일체화를 통해 북한과 중국 관련 유사시 타격 표적 분담, 연합작전 계획 수립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은 군사적 부담을 덜고 일본은 타격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와 관련해 도미타 코지 미국 주재 일본 대사는 최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지도자들이 일본 영토에 중국과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지상 기반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중거리 미사일 배치 또는 미사일 독자 개발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어떤 형태로든 일본이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추면, 한국에는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의 뜻과 무관하게 일본이 미국과의 협의를 앞세워 북한 내 군사시설 타격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군사적 움직임에 따른 후폭풍을 북한과 인접한 한국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강화된 공격력을 토대로 일본이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외교적으로 강경 기조를 유지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이 진행 중인 국가안전보장전략의 검토 결과를 주시하는 한편, 일본의 군사적 행동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미일 3국간 협력 강화 등의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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