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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동학농민군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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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10 23:29:56 수정 : 2022-02-10 23: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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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 등 동학교도와 농민이 합세해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다. 고부 군수 조병갑 등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농민의 분노가 폭발해 들불처럼 번졌다. 동학농민운동이 거세지자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에 일본도 톈진조약을 구실로 군대를 보내 청일전쟁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고종은 일본의 압력을 받아 개화파를 중심으로 군국기무처라는 최고결정기관을 설치해 내정 개혁, 신분제 철폐 등을 골자로 한 갑오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외세에 의존한 탓에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해 중도에 좌절됐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본격적으로 침탈에 나서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문화재청은 어제 전라도 화순 출신의 동학농민군 지도자 한달문이 나주 감옥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한글 편지를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옥중 편지는 그의 사촌동생의 손자가 족보 속에서 발견해 공개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동학농민군 편지(2022)’라는 이름을 달았다. 동학농민군의 처지와 실상을 살필 수 있어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편지 내용은 목숨을 구해 달라는 것이다.

“어머님께 올리나이다. 제번하고 모자 이별 후로 소식이 서로 막혀 막막했습니다. 남북으로 가셨으니 죽은 줄만 알고 소식이 없어 답답했습니다. … 돈 300여 냥이 오면 어진 사람 만나 살아날 묘책이 있어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님 불효한 자식을 급히 살려주시오.”

한달문은 화순과 나주에서 동학농민군을 이끌다가 나주성 공격에 실패하고 쫓기는 신세가 됐다. 1894년 12월 나주 동의면에서 유생·관군 중심의 민보군에게 체포돼 12월20일 나주 감옥에 수감됐다. 모진 매질과 고문을 받다가 어머니에게 구명을 요청했고 집안에서는 돈을 급히 마련해 구해냈으나 집에 온 지 이틀 후인 1895년 4월1일 장독(杖毒)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37세의 나이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도 돈을 쓰면 구명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관리의 부정부패에 맞서다가 옥에 갇힌 뒤엔 또다시 돈으로 목숨을 구해야 했던 당시 현실에 비추어 조선이 왜 망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고도 나라가 유지된 전례가 없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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