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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가장 고도화된 사회의 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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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04 23:58:43 수정 : 2022-02-04 23: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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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좋아졌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발달한 각종 첨단 기술의 향연에 우리는 대체로 경탄해왔다. KTX와 비행기가 이동 시간을 대폭 단축해줬고, 보일러만 틀면 밖이 엄동설한이어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방 안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공간을 가상현실(VR)로 체험할 수 있고, 인터넷의 발명으로 클릭 몇 번이면 전 세계 소식을 알 수 있다.

정지혜 사회2부 기자

발전의 부작용과 폐해가 부수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세상이 더 좋아졌다는 걸 의심한 적은 없었다.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더 이득이며 빈부 격차, 기후 위기 같은 일부 문제를 보완하면서 가면 된다고 여겼다. 최근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의 역작 ‘엔트로피’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리프킨은 기계적 세계관에 근거한 현대문명이 에너지를 지나치게 낭비함으로써 파괴와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엔트로피란 에너지의 흐름을 뜻하는 개념이다. 석탄을 태워 만든 전기가 다시 석탄이 될 수 없듯,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변형된 자연 물질은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기술이 점점 고도화하는 산업사회는 겉으로 진화한 듯 보여도 실은 모든 원천이 되는 자원을 빠르게 갉아먹고 있을 뿐이다. 이를 적용하면 인간 사회의 각종 문제를 기술과 성장으로 해결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엔트로피가 증가할수록 정비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 정리를 하지 않고 생활하면 갈수록 치우기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욕망이 줄어든 것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본다. 우리는 높아지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고(高) 엔트로피’ 사회를 살고 있다. 이 악순환은 사람들의 실질 소득·자산을 감소시키며 심리적으로도 높은 에너지에 쉽게 지치게 만든다. 국민소득은 증가했지만 삶은 더 팍팍해진 아이러니 속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정신적·물질적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또한 단지 ‘경제가 어려워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건 단편적 해석 같다. 지금보다 모두가 가난했던 과거에 출산율이 훨씬 높았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한 명의 인간이 발생시키는 엔트로피는 매우 크다. 상대적으로 ‘저(低) 엔트로피 사회’였던 시절을 지나 자원 고갈을 앞둔 지금은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서도 저출산이 최선이자 궁극의 해결책이라고 리프킨은 강조한다. 전 세계적 저출산 흐름은 인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일종의 생존 전략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빠르게 진행 중인 한국의 저출생, 초고령화 현상도 다시 보인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초고속 압축 성장의 상징과 같은 나라로, 지구촌 어떤 지역보다 높은 엔트로피의 사회가 아닌가. 이런 곳에서 자원 고갈 속도가 가장 빠른 것도, 사회적 피로도가 높고 인구 재생산이 가장 힘든 것도 놀랍지 않은 일이다. 방대한 에너지를 쓰면 그만큼 대가도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 그나마 현실적 대안은 발전(이자 파괴) 속도를 늦추는 ‘지속가능한 성장’일 것이다.


정지혜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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