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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자 공약’에 움직이는 표심, 기득권은 어리석다 생각할 것” [창간호 특별인터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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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31 11:12:55 수정 : 2022-01-31 11: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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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김지영 창원대 교수

창간 33주년을 맞아 세계일보는 한국에서 굳어진 ‘진입장벽 사회’의 면모를 긴급진단했다.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된 '젠더' 역시 진입장벽 사회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비기득권이던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하고 유의미한 영향력이 나타나자 남성 권력의 견제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팬데믹 이후 사회의 여러 불안정 요소가 심화하면서 남성의 지위 불안이 가중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가속화했다는 지적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교수(철학)는 이번 대선 국면에서 여성의 동등한 사회 진입에 대한 반동 정서가 정점을 찍었다고 분석했다. 페미니즘이 ‘시대 정신’으로 자리잡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남성 사회의 결집이 여성을 향한 가장 두터운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윤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관련기사: 철옹성이 된 기득권 중심주의… “국가 혁신·발전 막는 원흉” [창간33 - 진입장벽 사회]

 

-이번 대선은 유독 여성 유권자가 무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이라는 건 각 나라에서 존재하는 가장 뿌리 깊은 혐오가 가시화하는 계기다.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자극하는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여성혐오’다. 저는 이것을 '젠더 게임'이라고도 명명한다. 특정 성별의 지위 불안을 활용하는 방식이 계속 일어나고, 특정한 성별이 마치 이 사회의 모든 불안정한 체제나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여성가족부 폐지, 여성징병제,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 등을 통해 사회의 기득권자인 남성들에게 어필하려 한다. 동시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은 '진입장벽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경고를 내리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대선 후보라는 이 사회의 기득권 중에 기득권이 될 사람이 귀담아듣는 사람들은 여전히 2030 남성이라는 것, 그들이 이 사회의 표준적 존재라는 것을 계속해서 각인시켜주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진입장벽'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여성들은 생각했지만 이것이 착각이었다고 깨닫게 해주는 셈이다. 일종의 진입장벽을 더 쌓는 행위이자 더 공고히 해서 다시는 넘볼 수 없도록 여성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저는 읽고 있다."

 

-왜 남성들에게 더 어필하려고 하는 건가.

 

"여성들에게 공포감을 주면 여성들은 알아서 갈기갈기 찢긴다는 것을 사회는 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라며 남성들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여성이 있는 이상 여성들은 결집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찢어지는 여성 표심을 믿고 가는 것보다는 남성 표심을 얻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표심에 대한 해석이 이렇게 끝났기 때문에 반여성주의적 행보를 보인다고 풀이된다."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국민의힘 선대위에 합류했다 14일 만에 사퇴한 것은 어떻게 분석하나.

 

"소위 말해 여성 정치인은 얼굴 마담으로 썼다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보여줬다. 아주 굳건한 표심의 동력이 된다든가 근본적인 정책 기조를 바꿀 핵심 인사나 어젠더로 보지 않는 것이다. 20대 남성을 이미 잡았다고 생각한 윤석열 후보 측에서 20대 여성한테도 어필해야겠다며 한 선택이지만 국민의힘 안에서 내홍이 생기자 언제 그랬냐는듯 바로 내쳤다. 그리고는 곧장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공약을 내놨다. 여성을 티슈처럼 썼다 언제든 버려도 되는, 들러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 인식을 보여줬다."

 

-최근에 여성을 향한 ‘진입장벽’을 더 두텁게 쌓는 인상을 받는데,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2021년 초반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 전선이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그 시점이 페미니즘 대중화 5, 6년차로 중장기적 비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시기적 분기점이었다. 이때 제대로 고삐를 잡지 않으면 페미니즘이 10년쯤 될 때 시대 정신이 되고, 남성들이 자연스럽게 누려왔던 것들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고 느낀 것이다. 페미니즘이 시대 정신으로 자리잡지 못하게 하고, 여성들을 예전보다 더 퇴행된 상태로 만들려는 의지가 엄청나게 강하게 올라왔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인권 운동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반동이 나타나는 건 여성이 자기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한 위협감의 방증이다. 펜데믹 이후에 중장기화된 사회의 중층적 불안 요소들을 이 사회의 기득권인 남성들은 ‘남성으로서의 지위 불안’으로 잘못 해석한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여성이 남성의 몫을 빼앗가려 한다고 보고 이들을 잘 제압하면 이 모든 불안정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공격’이 청년 남성의 현실을 실질적으로 더 나아지게 만드는 건 아니지 않나.

 

"지금 청년 세대의 자기 소외감, 박탈감, 심리적 불안감, 불행감은 페미니즘을 제거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착시 효과'를 정치권에서도 계속해서 조장한다. 

 

청년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이 사회의 매커니즘은 사실 ‘능력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결과다. 능력주의 하에서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다. 상위 몇 퍼센트 엘리트에게도 언제든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긴다. 중상위층 아래의 사람에게는 내가 노력하지 않고 재능이 부족했다는 열패감, 소위감을 심는다. 거기조차 못 올라서는 하부 계층의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심리적 불안감과 양극화를 조장한다. 이런 심리적 불안감,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사회적 불만과 부정적 감정이 계속 축적될 때 이를 해소할 경로가 필요하다. 지금 그 경로를 이 사회의 소수자라 할 수 있는 여성으로 타깃 삼고 있다."

 

-‘여성혐오’ 카드를 치트키처럼 꺼내는 건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구조를 감추려는 것 아닌가.

 

"기어오르려고 하는 여성만 잘 눌러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면 이 모든 불안정한 상태가 해소될 수 있다고 하는 오인이 여성혐오를 ‘비즈니스화’하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뿐 아니라 유튜브, 1인 미디어 안에서 유통되고 '젠더 게임'에 입각한 잘못된 현실 진단을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기 하고, 그걸 정치권에서 또 그대로 공론의 장에서 증폭시켜 들여온다. 이 과정을 통해서 문제의 진짜 해소 방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마녀사냥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사회의 세대·경제적 기득권자에 대한 ‘구조적 불평등’을 보지 못하게 은폐하고 있다.

 

상위 몇 퍼센트 기득권자가 부를 독점하고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한다고 할 때 그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론, 사회적 가치 재분배의 문제가 정책적으로 어떻게 실현 가능한가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만든다. 오히려 공격 대상을 '여성'으로 몰아놓고, 이 소리치는 여성들만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출산율도 오르고 다 해결된다고 한다.

 

저출산 문제도 사회 구조적으로 굉장히 복잡하다. 부의 양극화, 천정부지로 솟은 주택값, 청년 고용 불안정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치인들의 정책적 비전이 부족할 때 이런 일이 생긴다. 그들이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을 면제받는 방식이 '건강하지 못한' 페미니즘 탓하기, '이기적인 비혼주의 여성'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을들의 싸움'을 붙이는 방식인가.

 

"이를 통해 진입장벽은 더 공고해진다. 젊은 세대의 여성과 남성끼리의 갈등 구조로 환원함으로써 정말 실질적 부를 독점한 권력 카르텔은 균열이 날 필요 없이 기득권을 유지한다. 을끼리 서로 주먹질하게 만듦으로써."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어떤 점이 우려스러운가.

 

"실질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기 때문에 여성 인권 수준이 2015년보다 못한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한 2030 남성들이 페미니즘과 여성가족부 등을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공격성을 높일수록 그들 역시 힘들어진다. 그렇게 하면 결코 여성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여성들과 결혼하는 것도 더 어려워질 거라고 본다. 왜냐면 여성들이 ‘위협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다고 느끼는 상대와 연애든 결혼이든 하기는 힘들다.

 

지금 기득권 세대인 50~60대가 20~30대의 표심을 굉장히 눈치보고 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실은 오히려 단 7자 글자만 올려도 표심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며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표를 단시간에 얻어서 정권을 장악한다고 했을 때 결국 그들은 시민들을 하대할 가능성이 높다. 비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 없다는 일종의 승인 메시지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혐오를 장작불처럼 때우는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치만이 난무할 것이라는 일종의 비관론을 갖고 있다.

 

남성들에게는 계속해서 '우리가 남초 커뮤니티 플로우를 다 따라가고 있고 당신을 대우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우리가 이렇게만 어필해도 공권력이 주목하는 공론장에 들어갔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이 ‘이들 안에 있는 혐오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시민들을 조종할 수 있다’, ‘비전을 제시할 필요 없는 얕은 수준’의 사람이라고 깔보는 마음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남’ 현상, ‘젠더 갈라치기’는 어떻게 분석하나.

 

"‘이대남’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허위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부장제에서 여성을 밟고 올라서는 마지막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면에서는 또 강자 그룹에 속한다. 이렇게 중층적 지위를 갖고 있다. 20~30대 남성 그룹은 소위 말해서 최상위 기득권자와 동일한 권력을 누리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남성 사회는 정말 서열 사회라서 나이, 학력, 고용조건에 의해 상명하복이 들어간다. 이대남 그룹은 남성 사회에서 많은 경우 하부계급에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강한 남성이 약한 남성을 짓밟는 건 현실의 생존 경쟁, 능력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내면화를 한다.

 

다만 그 안에서 발생하는 울분이 있을텐데, 마지막으로 여성들을 호령할 수 있는 권력만은 남겨달라고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여자들한테는 무시당해선 안 된다는 마지막 보루다. 최상위 남성 그룹이 볼 때 근본적으로 사회적 부를 재분배하기보다는 남성들의 마지막 식민지인 '여자 위에 설 수 있게', 이 조건만 만족해주면 된다고 읽는다. '젠더 갈라치기'를 자극적으로 계속 건드리는 이유다.

 

기득권에 앉은 최상위 남성들은 그 기득권을 깨는 계층사다리를 완전히 뒤흔드는 얘기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정치인들은 이를 이미 알고 있기에 안전한 상태에서 ‘젠더 갈등’만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시민의 수준이 대선 후보자의 수준을 만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 시민 사회의 수준이 대선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정말 사회 불평등의 근간이 되는 원인에 대한 해석, 분석을 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의 정치인은 왜 나오지 않고 있을까. 왜 여전히 후보 부인의 행실이 화제가 되고, 젠더 갈등에 의해 누구 표심을 어필해야 하느냐는 자극적인 공방뿐이고, 소수자 혐오가 '사이다' 같은 한 방의 해결로 오인되고 있을까.

 

문제는 이를 분석하는 이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로 스포트라이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다. 언론도 양당 후보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도한다. 이런 모든 문제의식을 갖고 언론이 대통령 후보자에게 던지는 질문의 프레임이 달라져야 한다. 시민들도 후보에게 기대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고민하고, 지금처럼 자극적인 키워드로만 좌지우지될 수 없는 지평을 갖고 있어야 한다."

 

-위협을 느끼는 여성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지금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이 터닝포인트 앞에서 용기와 인내심을 갖고 중장기적 비전을 공유하며 연대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소위 한국의 여성 운동 역사에서 도약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단기간으로는 이게 잘 안 보일 수 있다. 언론, 각종 저서 등에서 백래시라는 굴곡을 넘어선 역사적 사례, 로드맵, 비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시각이 대통령 후보자에게는 거의 전무하고, 온라인의 혐오적 발화만 공론장에 필터링 없이 들어오는 상황은 매우 안타깝다.

 

지금은 개인의 여성이 앞장서서 나올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여성가족부나 여성단체 차원의 지원이 들어가야 한다. 일종의 안전장치 안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이어받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매우 조직화된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해 심리, 법리적 자문 등이 동반돼야 한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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