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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 콜센터 상담사들의 노동환경·인권 현주소

입력 : 2022-01-22 01:00:00 수정 : 2022-01-21 21: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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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욱/창비/2만원

사람입니다, 고객님-콜센터의 인류학/김관욱/창비/2만원

 

“여성들은 시대가 변해 집을 벗어나도 결국 또 집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남편과 아버지가 고객과 상사로 바뀌었을 뿐이며, 가정 내 전통적 여성상에 대한 규범이 업체 안 규율과 통제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현대판 ‘디지털 현모양처’인 셈이다. 일과시간 동안 집을 돌보던 ‘하우스키퍼’가 상담 콜을 돌보는 ‘콜키퍼’로 잠시 전환된 것뿐이다.”

한국 산업근대화의 상징인 구로공단이 주력하는 산업 분야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으며, 자연스레 공단 내 여성 노동자의 일자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 구로공단에 ‘공순이’라 불린 여공들이 있었다면, 오늘날 같은 장소에서 이름을 바꾼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스스로를 ‘콜순이’라 부르는 콜센터 상담사들이 있다.

신간 ‘사람입니다, 고객님: 콜센터의 인류학’의 저자는 ‘무엇이 콜센터 상담사를 아프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0년간 현장 연구와 심층 인터뷰,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추적해 왔다.

앞서 2020년 3월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서울 지역 첫 집단감염 사례에 언론들은 콜센터의 노동환경에 주목했고, 근본적인 문제는 상담사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하청 구조에 있음이 드러났다. 오랜 시간 감정노동과 건강, 흡연과 중독에 대해 연구해온 문화인류학자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이번 책에서 콜센터의 내밀한 실상을 담았다. 콜센터 상담사의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부당한 처우를 현장감 있게 들려주며 이를 둘러싼 사회적 의제들을 다각도로 파헤친다. 구로공단의 ‘공순이’가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콜순이’가 된 현실부터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상담사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처우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실천까지, 콜센터의 어제와 오늘을 총체적으로 살핀다.

특히 저자는 그간 콜센터에 대한 논의가 악성 고객의 갑질 논란과 상담사의 감정노동에 국한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며, 콜센터 산업 자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로 시야를 확장할 것을 주문한다. 풍부한 인터뷰와 사진자료, 섬세하고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콜센터 문제는 근본적으로 여성 노동과 인권의 문제임을 꼬집는다. 저자는 현장 연구를 진행하며 여성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본능적으로’ 적합하다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맞닥뜨렸다고 고백한다. ‘사람입니다, 고객님’이 던지는 질문은 한국사회 여성 하청노동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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