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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목적에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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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20 09:00:00 수정 : 2022-01-20 08: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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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목적에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
‘선거판의 여우’ ‘마타도어의 귀재’ 엄창록 이야기
영화 속 8mm필름 1960∼70년대 분위기 재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변성현 감독 새영화 ‘킹메이커’

“어르신, 담배불 좀 빌려주세요”

 

상대 후보 선거운동원인 척하며 노인에게 오만불손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0월 0일 00식당에서 000 후보(상대 후보)가 식사초대를 하오니 참석 바랍니다’’라는 전단을 돌리고 바람맞힌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대문에 ‘O’ 또는 ‘X’를 표시한다. 물론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집에 ‘X’를 써놓는다. ‘X’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X’ 표시 측 후보에게 투표하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을 동네에 조성한다.

 

고무신이나 막걸리 등을 나누어 주었다가 ‘잘 못 전달했다’면서 되찾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가야할 게 내게 잘 못 왔다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이지만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가는 것은 더욱 화나는 일이다. ‘비호감’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수법이다.

 

상대 후보 선거운동원 또는 부인 등을 자칭하며 군중이 모인 장소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시장 등에서 가격 시비를 벌인다.

 

후보자들 벽보에 1등(금메달), 2등(은메달), 3등(동메달) 낙서하는 것은 시각적 효과가 크다.

 

헛소문을 내는 것도 잘 먹혀든다. ‘000 후보가 삼거리에 관광버스를 대놓고 온천 갈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 ‘며느리가 함께 살기 싫다 해서 멀쩡한 부모를 양로원에 맡겼다더라’ ‘A후보는 부정축재, B후보는 사기 전과가 있고, C후보는 첩이 셋이다’ ‘윗동네에서는 돈봉투 뿌렸는데 우리 동네엔 동전 하나 없다’

 

골탕을 먹이기도 한다. 값비싼 음식을 시켜먹고 000후보 참모라면서 외상을 달아놓는다.

 

1960~80년대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흑색선전(마타도어) 사례들이다.

 

요제프 괴벨스, 마오쩌둥의 심리전술에 정통하여 ‘선거판의 여우’ ‘마타도어의 귀재’로 불렸던 엄창록(?~1988)이 창안해 구사한 것으로 전한다.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읍 태생인 그는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 심리전 담당 하사관이었다. 전후 강원도 인제군에서 한약재상으로 살다가 1961년 재보궐 선거에 나선 김대중의 비서가 되어 당선에 기여했다. 특히 제7대 대통령 선거 신민당 후보 경선에서 김대중이 김영삼을 제치고 후보가 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와 접촉한 이후 1971년 대선에서 돌연 대통령 박정희 편에 선 뒤, 김대중 진영을 교란시켜 박통 당선의 주역이 된다. 이때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등 아직까지도 치유되지 않는 망국병,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우를 범한다. 이후 그토록 좋아하던 김대중 후보와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평생 동교동계를 피하다 1988년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했다.

 

엄창록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남아있는 기록조차 미미하다. 영화감독에게 이는 오히려 영화적 구성과 상상력을 키우기에 적합한 캐릭터가 된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자신만의 누아르를 선보였던 변성현 감독이 그를 주목했다.

 

새 영화 ‘킹메이커’는 바쁜 일정 하나쯤 뒤로 미뤄서라도 챙겨 볼 만한 영화다.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에게 뜻이 같은 선거전략가 서창대(이선균)가 찾아온다. 서창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선거 전술들을 펼치고 김운범 캠프는 연승을 거듭하며 대통령 선거를 향한 행보를 시작한다. 그러나 김운범 자택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서창대가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영화는 컷 수를 최소화 해 객석의 몰입을 돕는다. 60, 70년대 분위기를 되살려내기 위해 8mm 필름으로 촬영한 장면들을 섞어 넣어 당시의 일들을 진정성 있게 담아낸다.

 

양지에서 활약하는 김운범에게는 빛을 쏘이고 음지에서 일하는 서창대에게는 어둠을 깐다.

 

“쇼가 필요합니다.”(서창대)

 

“‘어떻게’ 이기는지가 아니고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한 법이요”(김운범)

 

견해 차이는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선생님을 그 자리에 올린 게 바로 접니다.”(서창대)

 

“욕심 때문에 근본까지 까먹지 말게. 이 자리 앉힌 것은 국민들이지.”(김운범)

 

”국민들이요? 걔넨 그냥 구슬리면 믿고, 말하면 듣고, 시키면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서창대)

 

“3·1운동, 4·19 다 국민들이 나서서 이루어낸 거네.”(김운범)

 

서로 다른 시선과 본의는 결국 결별을 낳는다.

 

“어른들은 역사를 좋아하지.”(이실장)

 

동서를 갈라치기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순간에 나누는 중앙정보부 이실장(조우진)과 서창대의 오싹한 대사가 인상 깊다. ‘백제’와 ‘신라’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조작했다는 걸 알기라고 하면 어떡하지?”(이실장)

 

“성난 소는 붉은 천만 보일 뿐, 그것을 흔드는 투우사는 보이지 않습니다.”(서창대)

 

변 감독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시대배경을 몰라도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당시 인물들과 정치적 역학구조를 조금이라도 살피고 보면 재미가 배가되는 영화다.

 

‘40대 기수론’은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지명전에 나선 김영삼(44세) 의원이 야당 후보의 조건과 자격에 대해 주창한 논리다. 신민당의 활기찬 이미지를 위해 나이 많은 후보 보다 ‘40대 기수’에게 리더십을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45세) 이철승(48세) 의원이 가세해 3파전을 벌였다. 70년 9월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1차투표 결과 김영삼이 최다득표자가 되었으나, 김영삼을 밀어준 유진산 총재의 행동에 분개한 이철승이 김대중에게 표를 몰아줘 2차투표에서 김대중 후보가 지명을 받았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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