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모는 작으나 전투력은 강한 군대. 세계 모든 나라의 군인은 군사력 건설 분야에서 ‘꿈의 조직’으로 불리는 작고 강한 군대를 만들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다. 유사시 국가를 지킬 능력과 비전을 갖고 있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하는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권을 중심으로 ‘강군 육성’ 관련 공약이 잇따라 등장한다.
내년 3월에 치를 예정인 대통령선거에서도 이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후보들은 군 간부 증원과 모병제, 병사 급여 인상 등과 같은 공약을 국방개혁의 일부로 제시하며 ‘군심 잡기’에 한창이다.
하지만 ‘강군 육성’이라는 국방개혁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군 인력 문제, 공공 일자리 차원서 접근하면 ‘위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24일 국방 5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병사 월급 200만원 시대를 열고 임기 내 징집병 규모를 15만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병역 대상자가 징집병과 기술집약형 전투부사관 모병 중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모병제’를 제안하면서 “임기 내 징집병 규모를 15만 명으로 축소하고, 전투부사관 5만 명과 군무원 5만 명을 충원하겠다. 선택적 모병제는 10만여 개의 청년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첨단 과학기술시대와 저출생 시대에 모병제는 불가피하다”며 “병사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줄어든 50%의 병력 중 절반(25%)을 전문부사관으로 충당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역병이 줄어드는 만큼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사회복무요원도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2030년대부터 상비병 30만 명 규모의 전면적 모병제를 공약했다.
심 후보는 “징병의 군대는 좌절의 세대인 청년들에게 깊은 상실의 공간이자 단절의 아픔”이라며 “직업군인은 청년에게 기회의 창”이라고 말했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정치권이 부사관 증원과 병역제도 변경을 공공 일자리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간 기업 일자리 증가가 쉽지 않은 만큼 공공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 고용 효과를 높이려는 것이다.
이같은 시각은 군의 경직성과 재정적 부담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평가다.
부사관은 일반 병사보다 훨씬 많은 급여와 수당 등을 받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병은 약 46만 원, 하사는 약 168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하사는 다양한 종류의 수당이 추가된다. 병사보다 훨씬 많은 인건비가 소요되는 부사관을 기존보다 대폭 늘리면, 군 인건비도 급증한다.
노무현정부 이후 국방부가 요구한 수준에 맞게 국방예산이 증가한 시기는 많지 않다.
국방예산 증가율이 군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늘어난 부사관의 인건비를 감당하려면, 전력증강을 비롯해 군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필요한 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체 예산에서 고정비로 분류되는 인건비 증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국방예산의 경직성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군을 첨단 기술집약형 군대가 아닌, 인력 집약형 군대로 만드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군인연금의 재정도 악화될 우려가 높다. 정원 확대에 따라 새롭게 임관하는 부사관 중 장기복무를 선택하는 인원이 추가되면, 미래에 군인연금을 수령할 사람도 그만큼 늘어난다. 국가가 지급해야 할 연금 규모도 확대된다.
문제는 군인연금의 적자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2030년 중기재정전망’에 따르면 재정수지 적자는 군인연금은 2021년 2조8000억 원에서 2030년 4조1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2021~2030년 군인연금 적자는 총 33조2000억 원이다.
공무원·군인연금은 정부가 지급 책임을 지고 있어 적자 폭만큼 국가에서 전액 지원해야 한다. 부사관 정원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해도 대규모 적자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선후보들의 공약대로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 정부 재정으로 메워야 할 군인연금의 적자 폭은 더욱 커진다.

인간 수명 연장에 따른 연금 지급 시기 증가까지 고려하면, 이같은 문제는 수십년에 걸쳐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를 희생하는 것이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모병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군비축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병력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관련 연구 결과는 비관적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조관호 책임연구위원은 최근 ‘국방논단’ 기고에서 미국, 영국 등 모병제 시행국가 사례를 한국 인구구조에 적용하면 2040년 상비군 병력은 10~20만 명이지만 같은 시기 입대기준이 되는 20세 또는 20~24세 인구를 감안하면 10만 명 이하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군 구조 슬림화·병사 역할 확대 필요
재정적 요인 외에도 부사관 증원을 어렵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지원율 감소다. 한국국방연구원 조관호 책임연구위원이 최근 ‘국방논단’에 기고한 연구에 따르면, 남군 부사관 민간모집 지원인력은 2016년 2만9000명에서 2020년 1만9000명으로 줄었다. 병사 복무기간이 줄어들면서 오랜 기간 복무하는 부사관 모집이 영향을 받은 셈이다.
직업군인에 대한 인식 제고와 사회적 경쟁력 향상을 위한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지만, 이같은 개혁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현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모병제 성격을 추가해 숙련병을 확보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 등을 위해 가능한 이른 시기에 사회로 진출하려는 병사들이 많은 현실에서 임기제부사관처럼 모병제 성격을 띠는 제도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군이 2008년부터 시행중인 임기제부사관(옛 유급지원병)의 경우 도입 당시 군은 전문하사 정원을 2만5000명으로 정했다. 하지만 인력난으로 정원이 감소, 2020년에는 정원이 8000명으로 줄었으며 실제 운영인력은 6000여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군 구조 개편과 병사 권한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필요한 정원을 찾아내 폐지하는 작업을 더욱 강도 높게 진행해 인력 소요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운영유지에 많은 인원이 필요한 노후 장비를 과감하게 없애고 최신 장비로 바꿀 필요도 있다. 오랜 시간 사용한 노후 장비는 고장이 잦거나 자동화 수준이 뒤떨어져 운영유지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최신 장비로 교체하면 정비 및 관리 인력 소요는 기존보다 감소한다.
공군의 슬램 이알(SLAM-ER)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운영유지와 관리에 투입되는 인력이 최신 공대지미사일은 타우러스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기초훈련헬기 도입 사업 후보기종인 미국 벨 505 제트레인저는 500MD보다 정비에 필요한 인력이 훨씬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병사에게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방개혁 2.0을 기준으로 할 때, 올해 한국군에서 병사는 30만 명이다. 간부보다 50% 많다.
군 내 다수인 병사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것이 전투력 강화의 지름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학력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전문적 교육을 받은 장교와 부사관이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6.25 전쟁 직후 문맹퇴치사업이 한창일 때는 글을 모르는 병사들을 간부들이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근 입대하는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세대) 병사 중에는 대학 재학 또는 졸업생이 다수를 차지한다.
Z세대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 세대로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IT)에 능숙하다. 실용성과 효율성, 자존감을 중시하며 ‘호기심’보다 ‘진심’을 우선한다.
한국군은 무인전투장비를 포함한 첨단 기술군대로의 변화를 추구한다. 첨단 기술군대의 핵심은 디지털이다. Z세대만큼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세대를 찾기는 어렵다.

간부의 전유물이었던 첨단장비 운용을 비롯한 핵심 임무에 병사의 참여를 늘리면 병사는 자존감을 높일 수 있고, 전투력 증강도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를 통해 병사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전문적인 임무를 수행토록 유도한다면, Z세대의 특성인 효율성과 실용성과 결합하면서 병영문화를 바꾸고 군 조직을 보다 유연하게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만드는 것은 국방개혁의 핵심 과제다. 인구절벽과 예산의 제약에 직면한 군의 전투력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국방개혁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높이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수십년 후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까지 고려한 전력증강 및 군 인력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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