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를 맞이하면 일출 명소를 찾는 발길이 분주하다. 아차산은 서울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결정된 데는 도심의 동서남북으로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 즉 내사산(內四山)이 있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더하여 외곽에도 동서남북에 네 곳 산 즉 아차산, 덕양산, 관악산, 북한산의 외사산(外四山)이 있고, 동쪽을 대표하는 산이 바로 아차산이다. 한강을 끼고 있는 아차산은 삼국시대부터 신라, 고구려, 백제가 영토 다툼을 한 격전지였다.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차산 고구려 보루(堡壘) 유적이다. ‘보루’란 돌이나 목책 등을 이용하여 튼튼하게 구축한 방어시설물을 뜻하는 말로, 지금도 꼭 지켜야 할 대상을 ‘보루’라 표현하고 있다. 5세기 고구려 장수왕 때 남하 정책을 펼쳐 백제 개로왕을 전사시키고 이 지역을 차지한 후, 군사 방어 시설을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는 5세기 후반 이 지역을 차지했지만,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과 백제 성왕이 연합작전을 펼치면서 이곳을 상실했다. 이곳에서는 건물 시설과 온돌, 간이 대장간과 아궁이, 쇠솥 등이 발굴돼 당시 대치 현장에 있었던 고구려 병사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4보루군의 아궁이에서 발견된 투구는 전의를 상실한 고구려 지휘관이 철수에 방해가 되는 무거운 투구를 버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차산 일대 고구려 보루의 본격적인 발굴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홍련봉 1· 2보루와 아차산 3· 4보루, 용마산 1· 2보루, 시루봉 보루가 발굴됐다. 산의 정상부를 평탄하게 해 주둔할 공간을 일부 마련하고 외벽을 목책 또는 석축 보루의 형태로 구축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고구려 유적지 대부분이 북한이나 중국 등에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우리 땅, 그것도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군사 시설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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