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위해 싸운 영웅으로 기억”

“버텨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죽어라(Stand or die)!“
6·25전쟁 초반인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 안에 갇혀 있던 미군을 향해 월턴 워커(1889∼1950) 장군이 외친 말이다. 당시 중장 계급장을 달고 미 육군 제8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워커 장군의 전사 71주기를 맞아 유엔군사령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인을 애도했다.
23일 유엔사 SNS를 보면 “남진하는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라인을 구축하고 막아낸 한국전 당시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이 1950년 오늘(12월 23일) 전사했다”라는 추모의 글이 게시돼 있다. 유엔사는 “제1차 세계대전 및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워커 장군은 언제나 야전에서 장병들과 함께했다”며 “이날(1950년 12월 23일)도 전방부대 전시 순찰 중 그가 탄 차량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전사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텍사스주(州) 출신으로 1912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워커 장군은 2차대전 후 패전국 일본 점령 임무를 맡고 있던 육군 제8군의 사령관이었다. 1950년 6월 이웃 나라 한국에서 공산주의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터지고 전황이 자유 진영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당시 미 극동군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명령으로 그해 7월 13일 한국에 부임했다.
그 시절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은 북한군의 강한 압박으로 낙동강 방어선 안에 갇혀 오늘날의 대구·경북 및 부산·경남 일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뚫고 남진해 대구, 그리고 임시수도 부산을 차례로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신생 공화국 대한민국으로선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만약 적이 대구로 진군하고, 길에서 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내 옆에는 내가 가장 믿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너희도 이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 이제 너희 각 사단으로 복귀해서 싸워라. 너희가 전방에서 돌아온다면, 관에 누워 돌아와야 할 것이다.”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미국 작가인 T. R. 페렌바크가 쓴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이란 책에 소개된 당시 워커 장군의 발언 일부다. 북한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공격하자 워커 장군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버텨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죽어라”라고 비장한 명령을 내렸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낙동강 방어선 안에 고립돼 있던 한국군 및 미군 등 유엔군도 방어선을 뚫고 북진에 돌입한다. 워커 장군은 서울 수복 후 약 3개월 만인 1950년 12월 23일 도봉산 부근에서 전방부대를 순찰하던 중 그가 탄 차량이 한국군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일어나며 목숨을 잃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 중 계급이 가장 높은 군인으로 기록됐다.
유엔사는 SNS 글에서 “워커 장군은 오늘날까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싸운 영웅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라며 “현재 미8군 사령부 본청 앞에 워커 장군의 동상이 있다”고 소개했다. 워커 장군 동상은 원래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안에 세워졌는데 미8군이 용산을 떠나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며 함께 평택으로 옮겼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광진구의 전망 좋은 언덕 위 워커힐(Walker Hill) 호텔은 그의 이름을 따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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