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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곳에서도 도움 요청 못해 ‘고립’ [그 아이가 보낸 마지막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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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21 06:00:00 수정 : 2021-12-21 10: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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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게시판 ‘죽음’ 거론하지만
이구동성 “도와달라” 눈물 호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A양은 때때로 죽음을 생각한다. 우울한 마음에 남몰래 자해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에게선 위로가 아닌 질책이 돌아왔다. A양은 청소년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게시판에 “선생님이 자해한 이유는 모르고 잔소리를 더 많이 한다. 엄마도 ‘너 때문에 술 먹는다’고 비난한다”며 “정말 죽고 싶다. 힘들다는 말을 할 곳이 없다”고 썼다. 죽음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면서 ‘말하고 싶다’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와 조언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이나 지인 등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청소년 상담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이를 이용하기 쉽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누가 좀 살려줘.”

극심한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A양이 한 청소년 상담 애플리케이션(앱)에 남긴 글이다. A양은 “가족들 앞에서는 활발한 척하지만 힘들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땐 자해를 한다”며 “상담을 받고 싶은데 엄마가 잘해줘서 (상담받겠다고)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우울함을 호소한 또 다른 청소년 B양은 수차례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고백했다. B양은 “힘들어 미치겠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해서 참고 있는데 밤이 되면 눈물만 줄줄 난다”며 “죽으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듯 위태위태한 상태. 하지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자신은 없다. B양은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친구나 부모님한테는 말을 못하겠다. 나만 참으면 다른 사람이 날 걱정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을 것 같다”며 정신적 중압감을 혼자 견뎌내고 있음을 토로했다. “먹고, 자고, 씻을 때도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으려는 생각을 안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살고 싶어요.’ 청소년 상담 앱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는 ‘죽음’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아이들은 죽음을 생각한다면서도 이구동성으로 ‘도와달라’고 말했다. 살려 달라는 비명이었다. 아이들은 누가 됐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했지만, 정작 자신을 아는 주변에는 이런 고민을 말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막다른 곳에 몰린 아이들은 고립감으로 더욱 힘들어했다.

◆상담받으려 ‘매크로’ 돌리는 아이들

 

20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위클래스·위센터(학교 상담센터)의 초·중·고등학생의 심리상담은 617만4387건으로 전년 대비 31.6% 증가했다. 학생 수가 매년 줄어드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증가세는 더욱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올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1만1710개교)에 배치된 전문상담교사는 3785명(32.3%)에 그쳤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전국 평균 배치율이 18.4%에 불과해 전문상담교사를 두고 있는 초등학교는 5곳 중 1곳도 되지 않았다. 한 청소년상담센터 관계자는 “상담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감이 높을 때는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아이들에게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지방은 보건교사가 없는 곳도 있다. 아이들이 정신건강 서비스 자체를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화나 채팅 등을 이용한 온라인 상담 채널도 있지만 연결이 쉽지 않다. 상담사는 적고 이용하려는 아이들이 많은 탓이다.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에 따르면 2019년 24만5842건이던 상담 건수는 지난해 32만742건으로 30% 이상 늘었다. 상담사 1인당 상담 건수도 같은 기간 499건에서 651건으로 급증했다.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에 상담을 요청했을 때 바로 상담원 연결이 되는 경우는 36% 수준에 불과했다. 상담 대기가 길어지다 보니 상담을 포기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 상담센터 관계자는 “한밤중에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아이들이 상담센터를 찾는다. 상담센터는 그 순간에 접할 수 있는 마지막 끈”이라며 “상담사가 부족해 모두 빨리 연결이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발행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청소년 자살 원인 탐색 및 예방 대책 연구’에 실린 청소년 자살 예방·대응 기관 실무자들의 심층면접(FGI)에서도 이런 상황이 잘 드러난다.

 

한 청소년 온라인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B씨는 “채팅 상담을 하는 채널에 굉장히 대기자가 많다. 어떤 아이는 ‘매크로’(자동 반복 실행 프로그램)를 돌려서 들어온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상담원도 “어떤 아이들은 한 시간 반을 기다리기도 하고,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며 “상담 연결이 되면 ‘어? 저 들어온 거 맞나요?’ 하면서 놀라기 일쑤”라고 말했다.

 

상담 채팅 대기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부러 자해·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담사들은 SNS에서 자해·자살 글을 쓰는 청소년을 찾아 메시지를 남기는 활동을 하는데, 자신의 글이 상담사에게 검색돼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대면 상담도 인력 부족

 

대면 상담 역시 인력이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다. 대표적인 대면 상담 기관인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경우 상담사 1인당 월평균 상담 건수는 300건 안팎에 이른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면 상담이 제한적으로 운영되면서 일시적으로 상담 건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3∼7일을 기다려야 한다.

 

서울의 각 자치구가 운영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도 상담 인력은 대부분 10명 남짓이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의 경우 몇몇 자치구에서는 상담 대기시간이 최장 2개월까지 걸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면 상담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정신과 전문의)은 “비대면 상담은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 아이들에게 ‘상담을 받았더니 도움이 된다’는 경험을 제공해 대면 상담으로 유도하는 창구의 역할이 크다”며 “제대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면 상담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청소년 상담센터 관계자는 “상담으로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현재는 모든 아이들을 구하기 어려운 여력”이라며 “인력과 예산 지원을 늘려 적어도 아이들이 원할 때는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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