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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방부, ‘진주만 80년’ 성명에서 日 거명조차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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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08 10:00:00 수정 : 2021-12-08 13: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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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적들, 이제 가장 가까운 친구 돼”
日 책임 안 물어… 인도·태평양 전략 강조
7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진주만 공습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왼쪽 3번째)가 미 해군 수병들과 나란히 서 있다. 호놀룰루=AP연합누스

“과거의 적들은 이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Old enemies are now the closest of friends).”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 80주년을 맞은 미국 국방부가 내놓은 성명의 일부다. 어느덧 80년의 세월이 흐른 가운데 일본은 미국의 핵심 우방국이 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아예 ‘일본’(Japan)이란 단어를 한 차례로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일본에 강렬한 친근감을 표시하고, ‘함께 힙을 합쳐 중국과 싸우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평가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7일(현지시간) 진주만 공습 80주년을 맞아 약 240단어 분량의 성명을 발표했다. 오스틴 장관은 성명에서 “오늘 우리는 진주만 공습 80년을 맞아 수많은 미국 장병과 민간인들이 그날 보여준 용맹함을 기린다”며 “또 공습에서 살아남지 못한 분들의 희생을 추모한다”고 밝혔다. 이어 “진주만 공습을 겪은 생존자 수는 해가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그들의 영웅적 행동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감사는 그대로”라고 덧붙였다.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국은 하와이의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 등에 근무하던 장병 2334명이 전사하고 민간인도 103명이나 숨졌다.

 

다만 240단어 중 ‘일본’이란 표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진주만 공습을 일으킨 당사자가 누구인지 적시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면서 “과거의 적들은 이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단수로 ‘적’이 아니고 복수인 ‘적들’이라고 씀으로써 일본은 물론 독일, 이탈리아까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들을 모두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굳이 일본 등을 비난하며 2차대전 발발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용서’와 ‘화합’의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다.

 

진주만 공습으로 발발한 태평양전쟁의 의미도 새롭게 재해석했다. 오스틴 장관은 “(진주만 공습을 극복한) 이 영웅들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건설했다”며 “우리(미국)는 이제 인도태평양을 수호하기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함께 헌신하고 있으며, 또 그 영웅들이 만든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수호하려는 노력, 특히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헌신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할 때 관행처럼 쓰는 표현이다. 중국이 인도태평양을 자유가 없고 폐쇄적인 지역으로 만들려 애쓰고 있으며, 국제법을 무시하는 중국이 패권국이 되면 국제질서가 무너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태평양전쟁은 일본과의 전쟁이었으나 이제 미국은 그 의미를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새롭게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지난해 12월 7일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국가는 당시 헌신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며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합당한 관심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 역시 “1941년 12월 7일 목숨을 잃은 2403명의 장병과 민간인들을 기억하겠다”며 “어두웠던 그날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구한 수많은 영웅들을 추모한다”고만 했다.

 

유력 인사들 가운데 일본을 비난하거나 일본의 책임을 추궁하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중국을 지목해 ‘이제 미·일이 힙을 합쳐 중국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편 이가 많았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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