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5000만배럴외 추가 방출 검토
국제유가에 어떤 영향
10년 만에 美 주도로 자율적 결정
6개국 방출량 최대 7000만배럴 추정
세계 하루치 소비량의 절반 조금 넘어
中 “실제 상황·수요에 따라 방출 안배”
전문가 “예상보다 적어… 유가 오를 것”
오히려 해결 열쇠 쥔 OPEC+ 자극
2022년 초 예정된 증산 연기 가능성도
2020년 동월 대비 213% 급등
수입금액지수 1년比 39%↑

미국 등 주요 석유 소비국의 비축유 방출 결정에도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미국과 한국, 일본, 인도, 영국, 그리고 중국까지 모두 6개국이 치솟는 유가를 잡기 위해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모양새다.
미 백악관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유가를 낮추기 위해 비축유 5000만배럴 방출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국제적인 기름값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상들과 통화를 하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며 “오늘 역대 최대 규모의 비축유 방출 결정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과 일본, 인도와 영국 및 중국 역시 비축유 방출에 동참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T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2.3%(1.75달러) 오른 78.5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등 주요국이 비축유 방출 결정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이미 오래전부터 나돌아 효과가 반감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제유가의 ‘키’를 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증산 가능성이 여전히 낮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브리핑에서 5000만배럴 외에 비축유 추가 방출을 검토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옵션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OPEC을 비롯한 주요 산유국이 원유 증산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국을 규합해 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만큼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사회 비축유 방출 공조, 산유국 결단 없인 임시방편
치솟는 국제유가에 미국과 한국·일본·인도·영국, 그리고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까지 전략 비축유 방출에 나섰으나 유가를 끌어내릴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주요 석유 소비국들의 비축유 방출은 2011년 리비아 사태 이후 10년 만의 일이지만 국제유가 결정의 ‘키’는 결국 산유국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산유국이 증산에 나서지 않는다면 비축유 방출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5000만배럴 규모 비축유 방출 발표에 대해 전문가 견해를 인용해 “이번 발표는 3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백악관의 결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미 행정부 발표가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만큼 충분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미국 외에 인도가 500만배럴, 영국이 150만배럴을 각각 방출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방출 규모는 420만배럴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24일 “원유 가격 안정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경제 회복을 실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국제 석유시장 안정을 위해 함께 협력해 온 미국의 방출 계획에 보조를 맞춰 국가 비축유 일부를 매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우 방출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방출 규모, 시기, 방식 등 관련 정보는 적절한 시기에 발표하겠다”며 “중국은 실제 상황과 수요에 따라 비축유 방출을 안배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비축유 방출 요청을 수용하긴 하되 세부 내용에선 독자적 대응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중국은 전 세계 주요 석유 생산국이자 소비국 중 하나로 오랫동안 국제 석유시장의 안정을 중시해 왔다”고도 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국제사회가 공동 비축유 방출에 나선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선 세 번의 방출이 국제에너지기구(IEA) 주도로 성사된 것과 달리 이번엔 미국 등의 자율적 공조로 이뤄졌다. 투자은행 RBC 캐피털 마켓은 미국 등 6개국이 방출할 비축유를 6500만∼7000만배럴로 추정했다. 세계 석유 하루 소비량의 고작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날 미 백악관이 비축유 추가 방출 가능성을 배제하는 않는다고 밝혔으나 현재로선 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국제유가 인상은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에너지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원유 감산에 들어간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들이 올 들어 경제회복과 더불어 에너지 수요가 다시 늘고 있는데도 생산 규모를 늘리지 않는 탓이다. 특히 유가 하락을 원치 않는 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비축유 방출에 반발해 ‘증산 연기’ 카드를 꺼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OPEC+가 비축유 방출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내년 1∼2월 계획된 증산을 최소 2개월 연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유국들은 당초 내년에 산유량을 하루 40만배럴씩 늘릴 방침이었으나 이 결정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신은 “OPEC+가 단합해 (비축유 방출에)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수하일 알마즈루아이 아랍에미리트(UAE) 에너지장관도 이날 “내년 1분기에는 석유가 공급과잉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시장에 석유를 추가로 공급해야 할 논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비축유 방출이 산유국의 증산 요인으로 작용하긴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골드만삭스 원자재팀 데이미언 쿠르발린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비축유 방출 규모가 시장 예상보다 적고 세부사항도 인상적이지 않아 오히려 원유가격 상승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10월 석탄·석유 수입액 31년래 최대폭 상승
지난달 수입금액지수가 1년 전보다 40%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가 급등하며 석탄 및 석유 제품의 수입금액지수가 2배 넘게 급등한 영향이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10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금액지수(달러 기준)는 150.27(2015년=100)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39% 오르며 11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석탄 및 석유제품이 전년 동월 대비 213.1%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 11월 기록한 448.6% 이후 31년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상승한 영향이 컸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이 수치는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해 4월(-40.7%)부터 마이너스를 보이다가 올해 3월(16.6%) 플러스 전환한 바 있다. 지난 4월(126.1%)부터는 100%를 넘어서더니 지난달에는 200%마저 넘어섰다.
수입물량지수(123.92)도 전년 동월 대비 7.1% 상승하며 14개월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수출금액지수(133.92)는 25.2% 상승하며 12개월 연속 올랐고, 수출물량지수(121.02)는 3.4% 오르면서 2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글로벌 석유제품 수출 호조의 영향으로 수출물량지수가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입가격(+29.9%)이 수출가격(+21.2%)보다 더 크게 오르며 순상품 교역조건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6.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상품 한 단위가격과 수입 상품 한 단위가격의 비율로, 우리나라가 한 단위 수출로 얼마나 많은 양의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우리나라 수출 총액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의미하는 소득교역조건지수도 3.6% 떨어졌다.
이 같은 무역 상황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진만 한은 경제통계국 물가통계팀 팀장은 “현재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추세가 전환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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