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커녕 5·18 모독하고 폄훼
변명과 회피로 역겨운 삶 살아”
당시 도청앞서 방송 박영순씨
“그날의 공포·악몽속에 42년”
녹화·선도공작 의문사규명위도
“진실 밝힐 범인들 사과도 없이…”

“죽음으로 5·18 진실을 묻을 수는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은 물론 광주 시민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5·18을 유혈 진압해 정권을 찬탈하고도 사죄나 참회하지 않고 버티면서 구차한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하다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유에서다. 시민사회단체는 전 전 대통령의 범죄 행위를 사후에도 끝까지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4개 단체는 23일 오전 광주 오월기억저장소에서 전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은 죽더라도 5·18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5·18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체는 “학살자 전두환은 자신이 5·18과 무관하다며 구차한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해 왔기에 우리는 그의 고백과 참회, 사법부 엄벌을 강력히 촉구해왔다”며 “그동안의 재판이 대한민국 헌정사를 유린하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책임자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역사적 심판’이 되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단체는 “하지만 전씨는 사죄는커녕 자신의 회고록으로 5·18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하면서 역겨운 삶을 살았다”면서 “그는 법정에 서서도 거짓말과 왜곡으로 국민과 대한민국 사법부를 기망하다 재판이 지연되면서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단체는 “전씨 사후에도 오월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 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는 “사죄 한마디 없이 떠난 전두환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전두환이 생전 어떤 식으로든 광주시민과 국민께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며 “하지만 그가 사죄를 하지 않고 버티다 숨졌기 때문에 우리도 용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들은 전씨가 유혈 진압에 대해 끝내 사과하지 않고 숨진 데 대해 분노하면서도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5·18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마지막 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에 처해져 뒤늦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영순(62·여)씨는 “광주의 얼룩진 피로 얻은 대통령이 지금껏 사과 한마디 없이 사망한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며 “공포의 총소리에 동료 학생들이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공포와 악몽으로 42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에 의존했지만, 지금도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시민 이태범(51)씨는 “비록 전씨는 숨졌으나,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 등을 통해 진실을 명확히 밝혀 5·18 영령들의 한을 달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두환정권 당시 군에 끌려갔다 의문사한 피해자의 유족 측은 전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사과 한마디 없이 죽었다”며 억울한 심경을 밝혔다. 이날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대책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유가족인 최종순 대책위 대표는 “진실을 밝혀야 할 범인들이 사과도 없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다”며 “군사정권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의문사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두환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가 주도한 녹화·선도사업은 학생운동 관계자를 강제 징집해 이들을 ‘프락치’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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