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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1931∼2021…끝내 사죄없이 영욕의 삶 마감

입력 : 2021-11-23 18:17:39 수정 : 2021-11-23 19: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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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쿠데타로 정권 찬탈
‘5·18 유혈 진압’ 역사의 비극
생전 과오 끝까지 입 다물어
“죽으면 북녘 보이는 곳에”
지난 2019년 3월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뉴스1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전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이날 오전 8시45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33년 전인 1988년 11월 23일 그가 재임기간 중의 독재와 비리에 대한 책임으로 백담사로 향했던 날이다.

그는 현대사의 비극인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광주 시민을 학살한 과오에 대해서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5·18 발포 명령과 관련한 진실 규명을 거부하고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와 상처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 사안은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전 전 대통령 측근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고인의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 전 대통령이 아침에 자택에서 화장실을 가려다가 쓰러졌다. 이순자 여사만 계셨고 외부에 연락할 틈도 없이 운명하셨다”며 소식을 전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12분쯤 현장에 도착해 사망 사실을 확인했고, 시신은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다.

민 전 비서관은 “2017년 회고록 3권 648쪽에 사실상 유서를 남겼다”며 “‘북녘 땅이 보이는 전방의 고지에 백골로 남아서라도 통일을 맞고 싶다’는 게 유서였다”고 했다. 이어 “평소에도 ‘나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뿌려라’라고 말씀을 가끔 하셨다. 가족들은 유언에 따라 그대로 하기로 했다”며 “장지가 결정될 때까지 일단은 화장한 후에 연희동에 모시다가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입구에서 민정기 전 비서관이 사망을 공식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931년 1월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그는 1955년 육사 11기를 졸업한 뒤 승승장구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을 이끌며 같은 해 12·12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했다. 계엄령을 선포한 뒤 ‘서울의 봄’으로 표출된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짓밟았다. 이어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다. 같은 해 9월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다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물러났다. 퇴임 후인 1996년 내란, 내란목적살인죄, 뇌물 수수 등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전 전 대통령은 생전 자신의 과오에 대해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밝혔고 12·12 군사 반란에 대해서도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민 전 비서관은 이날 ‘5·18에 대한 사죄가 없었다’는 지적에 “기회 있을 때마다 (했다). 33년 전 11월23일 백담사에 간 날에도 성명을 발표하고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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