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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내 사조직 '하나회'도 역사의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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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3 16:00:00 수정 : 2021-11-23 15: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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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했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23일 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 중 영남 출신들이 생도 시절 만든 오성회, 위관 시절에 회원을 추가해 만든 칠성회가 모체다. 

 

하나회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3년 7월 6일 5·16 쿠데타의 핵심 세력이었던 육군사관학교 8기를 몰아내기 위한 7·6 친위 쿠데타 시도다. 이는 실패했지만 육사 출신 장교들은 하나회의 존재를 인지한다. 당시 방첩대장은 12·12 쿠데타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였다.

 

이 때 위기를 넘긴 하나회는 전두환이 청와대 경호부대인 30대대장(현 제1경비단)을 지내는 등 세력을 키웠다. 1973년 윤필용 사건이 터졌을 때 강창성 보안사령관의 수사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지만, 정권의 기반을 유지하려는 박정희 대통령의 묵인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후 전두환은 육군 제1공수여단장과 제1사단장, 노태우는 제9공수여단장과 제1사단장을 역임했다. 이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5·6공화국에서 측근 그룹으로 등장했다. 5공화국 시절의 측근들은 1·1인맥, 6공화국 시절 실세들은 9·9 인맥을으로 불렸다.

 

전두환이 10·26 직전 보안사령관이 됐을 때, 특전사를 비롯해 서울 주변에서 출동할 수 있는 핵심 부대 중 상당수는 하나회 출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12·12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5공화국을 출범하면서 하나회는 군 수뇌부와 청와대 경호실장, 안기부장 등을 독식했다.

 

5공 출범 이후 육군참모총장(황영시, 정호용, 박희도, 이종구, 이진삼, 김진영) 중 황영시를 제외한 나머지는 하나회 소속이다. 보안사령관(전두환, 노태우, 박준병, 안필준, 이종구, 고명승, 최평욱, 조남풍, 구창회, 서완수)과 수도경비사령관(노태우, 박세직, 최세창, 이종구, 고명승, 권병식, 김진선, 안병호 등)도 하나회가 장악했다.

 

하나회가 득세하자 청죽회, 알자회 등 유사한 조직이 등장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하지만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하나회 숙청 작업으로 군 내 사조직은 무력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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