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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빛난 키신의 연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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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3 15:31:12 수정 : 2021-11-23 15: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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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프게니 키신.’ 수식어가 필요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다섯 번째 내한 공연이자 3년 만의 무대에서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진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두 살 때부터 악보를 보지 않고 피아노를 연주한 신동 출신 피아니스트로서 일생 정진한 내공이 담긴 연주는 관객을 대하는 그의 정성 어린 태도와 함께 객석을 매료시켰다.

 

그가 직접 짠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바흐에서 시작해 모차르트, 베토벤을 거쳐 쇼팽에 도달하는, ‘피아노’라는 건반악기가 발전한 100여년에 걸친 시간을 보여주기 위한 선곡이었다.

 

1부 첫 곡인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부터 키신은 강건한 타건으로 피아노에서 듣기 힘든 음색을 뽑아냈다. 장엄하면서도 화려한 오르간 연주로 유명한 이 곡을 키신은 피아노 건반의 힘만으로 만든 장대한 선율로 선보였다.

3년만의 내한 공연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이 일생 정진한 내공이 담긴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이어진 모차르트의 ‘아다지오 b단조’와 베토벤 ‘소나타 제31번 Ab장조’의 진중한 연주를 거쳐 2부에서 키신은 특기인 쇼팽 연주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다. 우선 쇼팽의 마주르카 60여곡 중 비교적 초기에 작곡된 일곱 곡을 연주했는데, 완벽한 곡 해석에서 만들어지는 완급 조절은 몰입감을 극도로 높였다.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연주는 마치 콘서트홀이 아니라 그의 연습실에서 연주를 듣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2부 마지막 곡은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 이제 오십대에 접어든 키신이 삼십대 중반부터 즐겨 연주한 곡이다. 이 화려한 곡을 키신은 왼손 연주를 오른손과 완벽하면서도 부드럽게 조화시키는 자신만의 탁월한 능력으로 선보였다. 

 

화려한 피날레에 쏟아지는 갈채는 키신 공연만의 풍경인 앙코르 행진으로 이어졌다. 기립박수 속에 30회가 넘는 커튼콜, 1시간에 걸친 10곡의 앙코르에 자정 넘긴 팬 사인회로 유명한 키신은 이날도 마치 자신의 우물 속에 담긴 물을 퍼내듯 아낌없는 앙코르로 객석 갈채에 화답했다. 네 번의 앙코르 중 세 번째였던 쇼팽 스케르초 2번은 이날 최고의 연주로 손색없었다.

사실상 3부나 마찬가지인 앙코르 행진 내내 정중하게 합창석을 포함한 모든 객석과 눈 맞춰 인사하며 환하게 미소 짓는 키신 특유의 커튼콜 답례와 앙코르 행진은 객석을 꽉 채운 클래식 팬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예매 25분 만에 매진된 이날 공연을 위해 평소 공연장과 연습실, 숙소만 왕복한다는 키신은 공연 전 이틀 동안 일곱 시간씩 연습하는 천재의 성실함을 보여줬다. 

 

최은규 평론가는 “원래 힘과 기교와 섬세함을 모두 갖춘 완벽한 연주자였는데 더욱 깊어진 음악을 보여줬다. 더 자유롭고 깊어지고 명상을 하는 느낌을 줬다. 잘하는 차원을 넘어선 연주였다”며 “신동으로 어릴 때부터 주목받았는데 오십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정진하며 더욱 높은 경지를 보여준 게 가장 놀랍다. 소리가 좋은 걸 떠나서 그의 정신 내면이 느껴지는, 음악이라는 예술이 무언지를 알게 해주는 연주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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