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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2021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18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어제 아침 신문에는 KT 위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는 두산 베어스의 광고가 실렸다. “구단 창단 첫 우승을 이룬 KT 위즈 이강철 감독과 선수단, 팬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보냅니다. 우리는 비록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내년, 또 한 번의 멋진 경기를 기대합니다. … 두 팀 덕분에 올가을, 행복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두산 선수들이 도열해 박수를 치는 장면이 담겼다.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는 것이 아닌, 패자가 경쟁자의 승리를 축하하는 광고라니. 그 ‘뜬금없는’ 의외성이 잔잔한 울림을 줬다. 우리 스포츠가 이 정도로 발전했나 싶기도 했다. 모든 경쟁이 그렇듯 승자와 패자는 있기 마련이고, 늘 승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승자 독식 구도에서 패자가 함께 웃는 모습이 종종 연출된다.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는 이들은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승리 자체보다 승리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런 모습은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자주 목격됐다. 당시 우리 태권도 선수단은 노골드로 대회를 마쳤다.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처음 있는 일이지만 비난받지 않았다. 대회 석 달 전 수술한 왼발로 은빛 발차기를 한 이다빈과, 8번의 항암치료 시련을 이겨내고 동메달을 목에 건 인교돈에게 오히려 큰 박수를 보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엄지 척’으로 상대선수를 축하한 이대훈에게는 “지고도 이겼다”는 격려가 쇄도했다. 메달 색 못지않게 선수들이 땀 흘려 이룬 성취를 소중히 여긴 것이다.

한국시리즈에서 늘 가을의 강자로 불렸던 두산 베어스가 창단 8년 된 막내 구단에게 치욕적인 4전 전패를 당했다. 선수와 구단 모두 속이 쓰리지 않을 리 없다. 비난여론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도리어 승자에게 축하를 건네는 여유를 보였다. 올림픽이 아닌 프로야구에서 이런 광경을 보다니 갈채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유쾌한 패자’로 남았다. 내년에도 KT와 맞붙는 두산의 모습을 보고 싶다. 팬들도 고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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