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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닮은 매화 춤과 노래로 꽃 피운다

입력 : 2021-11-21 21:00:00 수정 : 2021-11-21 20: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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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
서울예술단의 ‘이른 봄 늦은 겨울’. 매화에 얽힌 이야기를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펼친다. 서울예술단 제공

다른 꽃보다 뛰어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아(古雅)함이 풍기는 매화. 쭉 뻗은 매화 가지를 보며 만들어진 상념이 무대에서 춤과 노래로 피어났다.

서울예술단이 선보이고 있는 ‘이른 봄 늦은 겨울’은 매화가 주인공인 단편집이다. 매화 그림들이 전시된 어느 갤러리, 불 꺼진 밤이 찾아오자 그림 속 매화들의 이야기가 춤과 노래로 펼쳐진다. 남편이 생전에 아끼던 매화를 보며 슬퍼하는 늙은 여인, 눈보라 치는 산에서 매화 향기에 취한 남자, 사랑하는 사람을 매화에 투영해 살아가는 도공, 꽃잎 하나 피우지 못한 채 져버린 나무 등. 잠깐 피었다 지는 매화를 닮은 춤과 노래가 무대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흔히들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정도로만 알고 있는 매화에서 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 건 배삼식 작가다. ‘1945’, ‘화전가’ 등에서 서정적 서사가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 작가는 눈 내리는 어느 날 혼자 산길을 걷다 마주한 매화꽃 하나가 우리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한 데서 ‘이른 봄 늦은 겨울’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11일 전막 시연 이후 기자들과 만나 “2015년 처음 이 작품을 의뢰받았을 때 글을 덜 써야겠다 생각했다”며 “말이나 주장이 강하면 춤이나 음악이 그 말들을 설명하고 따라가다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춤과 노래만으로는 밋밋했을 극 전개에 임도완 연출은 자신의 특기로 다채로움을 더했다. 극 초반과 말미에 얼굴에 분칠한 세 광대가 등장해 너스레를 떨며 매화에 대한 잡설을 객석에 들려준다.

산만할 수도 있는 옴니버스식 구성인 이 작품의 무게점은 후반부 선보이는 달항아리 군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윤동주, 달을 쏘다’, ‘읽어버린 얼굴 1895’, ‘나빌레라’ 등으로 차곡차곡 가무극 레퍼토리를 쌓아가고 있는 서울예술단이 지닌 높은 예술성을 보여준다. 달항아리를 머리에 인 여인들이 매화에서 발견한 관능을 춤으로 보여준다. 잘 훈련된 단원이 좋은 안무가를 만난 결과였다. 서울 남산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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