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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재난… “회복재생력으로 극복하라”

입력 : 2021-11-20 02:00:00 수정 : 2021-11-19 19: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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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에만 사스·신종플루 등 잇단 발생
코로나는 네트워크 힘입어 급속 전파
美·中 패권전쟁도 지구적 재앙 우려

1600년대 페스트·대화재 겪은 英처럼
인류는 재난을 통해 더 강해지며 발전
실패는 반전을 위한 ‘입장권’이 되기도
세계적 석학 니얼 퍼거슨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은 앞으로 반복될 것이라며 회복재생력이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진은 지난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가면과 방역복을 착용한 시민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봉쇄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둠 재앙의 정치학/니얼 퍼거슨/홍기빈 옮김/21세기북스/3만8000원

 

운이 좋았다. 138억년 전 빅뱅으로 지구에는 분자 덩어리들이 형성됐고, 35억∼40억년 전 최초의 세포가 나타났다. 이후 혁신적 진화가 일어나며 10만∼20만년 전쯤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했고, 인간이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 것은 약 1만3000년 전의 일이다. 많은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져 우리 인류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의 상태는 무한히 지속되지 않는다. 오늘날까지 지구상에 나타났던 생물종의 99.9%는 이미 절멸했다.

인류가 공룡이나 도도새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게 정설이다.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애덤스에 따르면 인류의 종말은 9억∼15억년 사이에 일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인류의 파멸은 그보다 훨씬 빨리 도래할 것이라 예견하는 이들이 많다. 유대교와 기독교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횡행해온 종교적 종말론이 그렇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수명의 연장으로 인류는 죽음에 무감해졌다. 매년 5900만명, 매일 16만명이 숨을 거두지만 인간은 종말론의 자리를 ‘종말을 초래하는 위험이 상존하는 시대’로 메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런 시기에 발생한 종말을 연상시키는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인류는 21세기 들어서만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 여러 호흡기 감염병을 겪었다. 코로나19는 어떻게 팬데믹까지 발전하게 됐을까. ‘광장과 타워’ ‘금융의 지배’ 등을 저술한 세계적 석학 니얼 퍼거슨은 신간 ‘둠 재앙의 정치학’에서 코로나19의 파괴력은 전염병 자체의 위협보다는 ‘네트워크’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인간의 네트워크는 더 많은 노드(연결점)와 연결망을 가진 다중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바뀌었는데, 전염병은 복잡계 시스템 그 자체인 이 네트워크에 힘입어 기하급수적으로 전파됐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전염병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접종이나 치료제 등 의학적 개입이 아닌 ‘비의학적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보기술과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빠르게 변화할 국제적·지역적 네트워크를 간과한다면 또 다른 전염병과 재앙을 효과적으로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 시사한다.

니얼 퍼거슨/홍기빈 옮김/21세기북스/3만8000원

“인간은 수두에서 흑사병까지 자신들을 덮친 질병들의 성격을 의학적으로 해명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그 밖에 오늘날 우리가 ‘비의학적 개입’이라 부르는 조치들을 고안하여 효과적으로 운영해 왔다. 이러한 조치들의 본질은 사회가 네트워크의 밀집으로 ‘좁은 세상’이 되는 일을 막도록 네트워크 구조를 수정하는 데 있다.”

이 같은 네트워크의 수정은 일반적으로는 위계적 체계의 명령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퍼거슨은 강조한다. 퍼거슨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재난은 본질적으로 예측불능이며, 둘째 자연적 재난과 인공적 재난이라는 이분법은 성립할 수 없으며, 셋째 재난의 결정적 실패의 지점은 명령 위계 구조의 최상층이 아니라 그 아래 어딘가에 있다. 넷째, 병원균으로 인한 신체의 전염이 벌어질 경우 정신의 전염과 파괴적 상호작용을 맺게 될 경우가 많고, 마지막으로 예측 불가능한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맞춤형 매뉴얼 같은 관료적 행태보다는 모든 사태에 대해 호들갑에 가까이 대응하는 편이 낫다. 그의 결론은 “민주적 제도가 모든 재난의 안전장치는 아니다”는 것.

가장 먼저 대의제 정부가 나타난 영국의 경우 강한 독성을 가진 ‘농무(濃霧)’를 예방한다며 1853년 ‘연기발생저감법’을 제정했으나 1879년 겨울 사흘 동안만 1만2000명이 석탄 연기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민주주의 체제의 압력은 여러 법안들을 만들어냈지만 최악의 스모그 사태들은 계속 이어졌다. 20세기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도 마찬가지다.

퍼거슨은 팬데믹의 가장 중요한 귀결은 국내(미국) 정치가 아닌 지정학의 영역에 있다고 본다. 인류 역사상 초과사망률을 올리는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인 팬데믹과 전쟁은 발맞춰 함께 오든가 아니면 뒤를 이어 따라올 때가 많다는 것.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시작된 ‘제2차 냉전’ 미·중 패권 경쟁이 지구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제1차 냉전이 한국전쟁을 만들어냈듯이 비슷한 종류의 대결 양상이 대만 문제를 놓고 점점 더 격화된다는 것이 팬데믹 이후 기간 동안 나타날 가장 명백한 리스크 중 하나다. 무역과 기술, 정치 영역의 양국 갈등이 심해지는 와중에 터진 코로나19는 미국의 정치와 사회 시스템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고, 세계적 학자들은 이를 미국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간주했다.

저자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백신 개발, 빠른 경제회복 속도 등을 봤을 때 미국이 세계에서 여전히 지배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며 이를 중국이 이른 시일 안에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오히려 중국의 부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담론 자체가 미국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어떤 사회와 국가는 ‘앤티 프래절(anti-fragile)’ 즉 재난을 통해 더 강해진다. 1665년 마지막 대규모 페스트, 그리고 이듬해 대화재로 고통받았던 런던은 이후 거의 두 세기 동안 전 세계의 중심 도시라는 명맥을 유지했다. 고대 로마의 폼페이, 중세의 페스트, 현대의 체르노빌 등을 겪으면서도 인류는 진보했다.

대신 역병은 진보가 이미 멈추고 침체가 시작된 지역들에 파괴적 충격을 가져올 것인데, 그 대상은 위기에 빠진 인류가 아닌 ‘위기에 대처하는 데 실패한 국가 관료조직’이라고 저자는 내다본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회복재생력(회복탄력성)과 함께 위기에 더 강한 사회적·정치적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퍼거슨은 책 곳곳에서 20세기 최고의 외교관 헨리 키신저의 말을 인용한다. “실패는 반전을 위한 ‘입장권’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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