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만에 나타난 아들이 산재 사망자의 유족급여 지급을 요청한다면 법원은 어떠한 판단을 내릴까.
지난달 19일 서울행정법원 제8부는 사망한 근로자(고인)의 아들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유족급여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유족급여 지급 우선순위인 ‘생계를 같이 한 유족’을 판단할 때, 형식적인 주민등록보다 유족이 사망 근로자와 ‘실질적인 생활 공동체’를 이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이에 30년을 떨어져 있던 아들보다 재혼 후 30년을 함께 산 부인에 유족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2017년 8월 고인은 경기도 화성 공사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겪었다. 이후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치료 중 2020년 1월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이에 재혼 후 함께 살던 부인 B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고, 공단은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으나, 본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A씨는 “B씨가 아닌 자신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고인이 재혼 후 30년간 인연을 끊고 살았던 A씨는 공단이 요구를 거부하자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소송의 이유로 “B씨는 사망 당시 고인과 생계를 같이 하고 있지 않았다”며 “B씨는 사고 이후 제대로 치료를 돕지 않아 결국 내가 직접 2018년 6월 고인을 요양병원으로 전원시키고 사망할 때까지 치료와 간병을 전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B씨는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지만 (나는) 장례를 지내고 비용도 부담했으며, 고인은 요양병원 전원 이후 주민등록상으로도 나와 세대를 함께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유족보상연금 수급자 순위에서 배우자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가운데, 배우자가 근로자와 ‘생계를 같이 한’ 경우가 아니라면 근로자와 생계를 함께한 자녀가 수급할 수 있도록 했다.
고인과 B씨는 결혼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고인의 소득으로 생활을 함께해 온 이들은, 사고 이후에도 고인의 기초노령연금과 간병비, 휴업급여 등으로 의료비를 지출하고 남는 돈으로 B씨와 함께 생활해왔다. 이후 B씨는 고인을 화성의 노인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간병했다.
그런데 30년 동안 연락이 없던 A씨는 고인의 사고 소식 이후 B씨의 동의를 얻어 고인을 자신이 사는 집 근처의 요양병원으로 이송했으며, 고인의 주민등록상 주거지를 자신의 주소지로 변경했다.
A씨는 이에 대해 “B씨가 고인과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달라 ‘생계를 같이 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자신이 주민등록상 생계를 같이 한 유족”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생계를 함께 한 유족’이란 주민등록표상 세대를 같이 한 유족으로 한정하는 게 아니라 근로자의 소득으로 생계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유지한 경우를 포함한다”며 “사망 당시 고인과 주민등록지가 달랐다는 사정만으로 B가 ‘생계를 같이한 유족’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산재보험법상 유족급여는 근로자 사망 당시 그가 부양하던 유족의 생활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B씨는 30년 이상 망인과 생계를 같이하면서 망인의 소득과 급여로 생계를 유지해 왔지만, A씨는 30년 이상 고인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씨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인의 주민등록상 주거지를 자신의 주거지로 옮겼을 뿐 실제로는 동거하지 않았다”면서 공단과 B씨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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