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3일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4분기 ㎾h당 연료비 조정 단가를 기존 -3원에서 3원 오른 0원으로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월평균 350㎾h를 사용하는 4인 가족이 10월부터 매달 최대 1050원 상향된 전기요금을 적용받게 됐다.
이번 전기료 인상은 2013년 11월 이후 8년 만으로, 지난 6~8월 국제 액화천연가스(LNG)와 유연탄, 유류 등 연료 가격이 크게 오른 여파로 결정됐다. 원래 3개월 단위로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한전의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2분기부터 인상해야 했지만, 소비자물가 등을 고려해 2∼3분기 동결 후 4분기에 처음 반영됐다.
국내에서 공공재 성격이 강한 전기료를 인상하기 어려운 한전은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사회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이었던 만큼 요금을 원칙대로 조정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정으로 한전은 2분기에만 7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
전기료와 수도료 등은 서민 물가와 직결되는 탓에 올겨울 기존의 에너지 빈곤 가정을 포함해 경제여건이 열악한 차상위층과 코로나19 장기화 타격을 입은 자영업에 대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전기협회에 따르면 기후대응과 ‘그린 에너지’ 전환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에너지 빈곤 대상은 127만가구(2020년 4인 가족 최소 생계급여 절대 빈곤층 기준)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은 온난화로 이상기후 현상이 가속하면 더욱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처할 것으로 분석된다.
기후변화 위기 대처에 대한 전 세계 의지와 흐름은 확고하다. 유럽연합(EU)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미국은 2005년 대비 50~52%, 일본은 2013년 대비 46%의 온실가스를 각각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역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하겠다는 내용의 NDC를 유엔에 제출했으며, EU와 스웨덴,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캐나다,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 중립을 법제화했다.
우리의 탄소 중립 그린 기술은 EU와 미국 대비 8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린 에너지 전환에는 막대한 자금과 기술 투입이 예상된다. 이로 인해 산업계에서는 목표치가 지나치게 과하게 설정됐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는 결국 일자리 감소와 고용 축소, 에너지 빈곤 가속화로 이어지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 산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가파른 탄소 중립 정책으로 철강과 석유·화학, 시멘트 등 고탄소 산업군의 고용이 30년 만에 20%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됐다. 지난 9월 기준 제조업 취업자 수 429만명 중 약 86만명이 에너지 대전환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린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 세계는 막대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는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향후 10년간 전환 및 저탄소 기술에 21조달러(2경4769조5000억원) 이상의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칫 현재 세계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폐막한 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통해 파리 협정 6조가 타결됨에 따라 탄소시장을 통해 온실가스의 감축 비용이 크게 절감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아직은 그 결과가 분명치 않다. 또 자칫 국가 간 온실가스 감축량이 이중으로 계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해 11월 ‘녹색산업’ 분류표인 그린 택소노미(Taxonomy) 초안을 공개하며 ESG(Environment 환경·Social 사회·Governance 지배구조)와 기후대응, 탄소 중립 정책의 전 세계 선두에 선 EU도 역풍을 맞고 있다. 당초 택소노미 첫번째 안에는 LNG와 원자력이 녹색산업이 아닌 것으로 규정됐으나, 다시 올해 3월 발표된 초안에는 녹색으로 분류됐고, 지난 5월 발표된 지속가능한 금융 분류법에 따른 택소노미 1차 이행 규칙에서도 이 두 산업은 포함됐다. 그러나 지난달 발행된 EU 집행위원회의 녹색채권 2500억유로(약 337조4500억원)에서는 다시 두 산업이 프레임워크에서 배제됐다.
이렇게 EU 녹색정책이 갈피를 못 잡는 사이 유럽은 에너지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9월 유럽노동조합연맹(ETUC)은 유럽인 270만명이 생계 수단이 있음에도 가정 내 적절한 난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니콜라스 슈미트 EU 고용·사회정책 집행위원은 이를 인정하면서 “최근 급격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유럽 내 에너지 빈곤이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독일은 재생 에너지세를 기존 대비 3분의 1로 인하했으며, 프랑스는 저소득 가정 난방 비용에 100유로(13만7000여원)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유럽 내 에너지 빈부 격차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사태 후 경기회복에 필요한 에너지와 전기를 그린 에너지로 급격히 전환하려고 한 정책적 실패도 간과할 수 없다. 유럽의 이 같은 ‘그린 딜’과 택소노미에 이어 이번 COP26까지 이어진 급진적인 탄소 중립 기조가 기존 에너지 비용의 급상승을 불러일으켰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5일 기준 MMbtu(열량 단위)당 5.516달러로, 연초 대비 두배 넘게 올랐으며, 유럽 가스 벤치마크인 TTF(네덜란드가스허브)의 10월물 가격도 ㎿h당 79유로(93.31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휘발유 및 가스 가격의 급상승, 석탄과 구리, 니켈 등 원자재 가격의 급등,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과 러시아권 국가의 가스 공급 제동까지 모두 에너지 전환의 부작용으로 지목됐다. 여기에 유럽 에너지의 약 14%를 담당하는 풍력 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의 낮은 가동률도 에너지 가격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와중에 EU 집행위는 탄소 배출권 공급을 축소하면서 유럽의 탄소 가격까지 거의 3배 가까이 올랐다.
EU의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한국 정부의 속내는 착잡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3월 ‘탄소 중립 기술혁신 추진전략’ 내 10대 핵심기술을 발표했는데 ▲태양광·풍력 ▲수소 ▲바이오 에너지 ▲철강·시멘트 ▲석유화학 ▲산업공정 고도화 ▲CO2 포집·저장·활용(CCUS) ▲수송 효율 ▲건물 효율 ▲디지털화에 대한 2050년까지의 기술별 목표와 중점기술 개발 방향을 담았다. 어디에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자 기존 탈원전을 외치던 국가 일부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새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11일 프랑스와 폴란드, 체코, 핀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등 유럽 10개국의 경제·에너지 장관 16명은 “우리 유럽인은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 등에 공동 기고했다. 그린 에너지 전환과정에서 불가피한 사회적 양극화와 에너지 빈곤의 심화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고백인 셈이다.
김정훈 UN SDGs 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 지위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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