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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 필요” 공감대… 시민들, 전기료 부담 온도차 [심층기획-‘에너지 대란’ 유럽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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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15 06:00:00 수정 : 2021-11-17 14: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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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유럽 시민이 말하는 에너지 위기

韓과 다른 ‘기후변화 문제의식’
獨생활 8년차 교민 “환경이 최대 이슈”
전력난에도 재생 에너지 지지 압도적
원자력발전 두고는 찬반 의견 엇갈려

전기료 인상 아직은 견딜만
전력시장 민영화… 年 단위 요금 책정
연말정산처럼 사용량 따져 사후 정산
인상분 소매가격 반영까지 시간 걸려

에너지 전환 비용 반기진 않아
“유럽인이라 지갑 열거란 생각은 환상”
기자에게 “요금 더 낼 의향있나” 반문
“아마도” 대꾸하자 “거짓말 마라” 응수

전력시장 체제가 인식 차 유도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 선택권 있어
대부분 시민 ‘최저가 전기’ 선호하지만
요금 더 부담하며 ‘재생만 사용’ 고집도
영국 글래스고와 가까운 도시 에든버러를 잇는 도로 주변 곳곳에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취재하기 위해 영국으로 향했다. 비행기가 영국 서부에 가까워지자, 창밖 아래로 바다 한가운데서 부지런히 돌아가는 새하얀 풍력발전기 수십대가 눈을 사로잡았다. 에든버러 공항에 내려 숙소를 잡고, 글래스고로 향하는 도로 주변으로도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영국에서 풍력발전은 전체 전기 발전량의 25%에 이르는 핵심 전력원이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이 지역에 바람이 충분히 불지 않아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이 때문에 천연가스 수입이 늘고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 대란’이 발생했다. 현지에선 겨울 추위를 앞두고 전력난이 가중되는 한편 전기 요금이 크게 오를 것이란 경고와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이를 두고 국내에선 ‘유럽이 재생에너지 가속페달을 밟다 화를 자초했다’, ‘에너지전환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 물론 유럽에서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주로 글로벌 석유회사나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들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이나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같은 유럽 내 주류 집단에선 ‘전환 속도가 더딘 탓’이라거나 ‘탄소중립을 앞당겨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에너지 대란은 어떤 것일까. 정말 겨울철 난방을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비싼 전기요금에 못 이겨 탈탄소 정책에 반감을 갖게 됐을까. 그럼에도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대응이란 현 인류가 당면한 거대한 과제 앞에 유럽 시민이 관철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삶에 쫓겨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평범한 시민의 모습일까. 유럽 에너지 대란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4회에 걸쳐 에너지난의 원인과 대응책,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를 짚어본다.

 

세계일보는 COP26이 진행 중이던 지난 1∼5일 영국 글래스고와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외신과 전문가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좀 더 다양한 국적의 시민을 만나고자 줌(화상회의 플랫폼)과 이메일, 카카오톡, 왓츠앱 같은 인스턴트 메신저도 활용했다.

 

◆전기요금 인상 “확실한 체감은 아직”

 

‘전기요금 폭탄’, ‘에너지 위기’ 등 국내 보수 언론이 전하는 자극적인 소식과 달리 세계일보가 만난 유럽 시민들은 ‘올해도 또 오르는구나’ 수준의 반응을 보였다.

 

글래스고 시내 한 쇼핑몰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루이스 모그(46)씨는 “아직 전기요금을 내지는 않았는데 그런 걱정이 있는 걸로 안다”며 “최근 천연가스와 석유 가격이 올랐다더라. 천연가스 가격은 매년 오르기만 하고 떨어지지를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모그씨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겨울 난방이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감기에 걸리는 것도 아닌데”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전기요금 변동을 놓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독일인 라우라 홀츠마이어(32)씨는 “올 초에 3유로(약 4000원) 정도 올랐다”며 “에너지 대란까지는 아니다”는 반응이었고, 크리스토프 테레스(29)씨는 “지난해 매달 42유로를 냈는데 올해는 37유로를 낸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럽 시민이 아직 큰 폭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언론이 전하는 위기감과 시민의 반응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유럽의 전기요금 책정 구조가 주요 원인이다. 언론의 ‘전기료 급등’ 소식에서 전기료는 ‘전기 도매가격’을 뜻한다. 유럽 전력시장은 민영화돼 있어 도매가격이 오르면 소매가격도 인상되지만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또, 통상 연 단위로 고정요금을 책정하고, 올해 전기 생산에서 발생한 인상분은 내년도 요금에 반영된다. 한국의 연말정산처럼 사후에 정산되기 때문에 사용량에 따라 돈을 더 낼 수도 있고 되돌려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그래서 전기료가 올랐다거나 오를 것이란 사실은 알아도, 얼마나 올랐고 오를 것인지에 대해선 모른다는 이들이 많다. 벨기에인 우사인 와타라(27)씨의 “2021년 요금이 지난해보다 대략 30%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방송국 앵커 같은 답변은 이런 이유에서다.

 

인상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글래스고 기차역에서 만난 로나 더귀드(63)씨는 친절한 미소를 띠며 “환경 문제에 관심이 아주 많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질문을 시작하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전기요금이 많이 오른 건 대부분 천연가스 때문”이라며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전기요금도 같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와타라씨도 “천연가스 수급 불균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답했다. 이 밖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전기 수요가 늘었다”거나 “화석에너지 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도 있었다.

 

◆기후변화 “심각하고 가장 시급”

 

유럽이라고 모든 이들이 환경을 최우선 관심사로 두는 건 아니었다. 영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환경에 관해선 잘 모른다”며 거절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기후 대응보단 내 주머니 사정을 더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테레스씨는 “전기요금이 올라 다른 지출 계획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그건 싫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다만 기후변화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모그씨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우리는 서로 다른 계절을 가졌었는데 지금은 계절이 완전히 잘못됐다”면서 “이런 계절적 변화에 더 많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힘을 줘 말했다. 그는 이어 “에너지나 농업 분야 등에서 새로운 생산방식을 찾아야 한다”며 “상황이 나빠지니까 점점 그에 익숙해지려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글래스고대학에서 공부하는 마리 윌리엄슨(21)씨와 제인 깁슨(22)씨는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이들은 “국제사회가 바로 당장 해결해야 한다”며 영국 정부가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78% 감축하겠다는 목표에 대해서도 “그 시기를 더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언론에서 기후변화 이슈는 우리나라보다 더 자주, 더 크게 다뤄진다. 한국에서 언론인 생활을 거쳐 독일에서 8년째 생활 중인 이유진(35)씨는 “여기선 환경 뉴스밖에 안 나온다”며 “(9월) 총선 때도 환경이 제일 큰 이슈였다”고 잘라 말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워낙 강한 영향인지 에너지 대란에도 재생에너지 비중은 더 늘려야 한다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더귀드씨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 동의한다”며 “스코틀랜드는 바람과 물, 태양열 같은 훌륭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갖고 있고 이걸로 자급할 능력도 있다”고 설명했다. 윌리엄슨씨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물론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원자력발전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모그씨는 “체르노빌사고를 기억하지만 그건 1980년대 중반이고 원전은 깨끗하고 효율적”이라며 “폐기물 처리 문제가 있지만 잘 처리하기만 한다면 사용해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프랑스인 줄리 페레즈(43)씨는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탈원전을 지지한다”면서도 “현실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원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라고 답했고, 와타라씨는 “독일 같은 탈원전이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기술 제약 관점에서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원전을 활용하는 게 좀 더 요령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홀츠마이어씨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재생에너지에 집중해야 한다”며 탈원전에 손을 들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탈석탄 달성 시점에 의문을 던지는 이도 있었다. 영국은 유럽에서도 특히 탈석탄에 속도를 내는 국가다. 영국의 목표는 ‘2024년 석탄발전 중단’이다. 모그씨는 이 목표에 대해 “2024년? 행운을 빈다”며 당황스러운 미소와 함께 허탈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자”며 “이건 꽤나 의욕적인 목표 같은데, 깨끗한 자원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지만 변화가 꽤 빠르고 시간이 촉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도가 인식을 만든다

 

이번 인터뷰 과정에서 유럽 전기요금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현지에서 나고 자란 유럽인과 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교민의 인식이 완전히 엇갈렸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전기요금이 비싸다. 우리나라 4인 가구 기준 한 가정이 5만원가량 낸다면 영국은 가구당 100파운드(약 15만원), 프랑스도 100유로(약 13만원) 안팎으로 낸다고 답했다. 독일에서 4인 가구로 사는 교민은 월 평균 120유로(약 16만원)를 낸다고 했고, 1인 가구이거나 둘이 살면 40∼50유로(약 5만∼6만원)를 다달이 지불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엄청나게 부담스럽지는 않다”거나 “그러려니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홀츠마이어씨는 “감당 못할 수준이었던 적은 없다”고 했고, 페레즈씨는 “난방을 따뜻하게 하면 한 달에 수백유로씩 나가기 때문에 집 온도는 15도 정도로 해놓는다”고 말했다. 모두 덤덤한 표정이었다. 되레 이들은 한국의 전기요금 수준을 듣고서는 ‘왜 그렇게 싼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교민들은 유럽 전기요금에 혀를 내두른다. 독일에 14년째 산다는 김보라(39)씨는 에너지난으로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소식에 “충분히 비싼데 또 오른다”며 “우리 가족이 한달에 평균 330㎾h를 쓰고 월 99유로(약 13만원)를 내는데, 한국에선 350㎾h에 4만5000원을 낸다고 들었다. 너무 비싸게 느껴진다”고 했다.

 

유럽인들 역시 요금 인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떤 비용을 내도 탈탄소를 지지한다”(더귀드씨)거나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기후변화로 더 큰 값을 지불해야 한다”(홀츠마이어씨)는 이도 있지만, “수입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탈탄소 정책을 지지할지 모르겠다”(테레스씨)는 반응이 만만치 않다. 와타라씨는 역으로 기자에게 “요금을 더 내고라도 그린에너지를 쓰겠느냐?”고 물었다. ‘아마도?’라는 대답에 그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유럽인이라고 지구를 위해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 것이란 생각은 환상이다. 특히 에너지 전환 비용이 취약계층에게는 큰 부담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유럽인이라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비싼 전기요금을 부담하려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는 전력시장 체제에서 크게 유인했다. 유럽은 내가 쓰는 전기 중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이 얼마나 되고, 얼마만큼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내 전기로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시민은 ‘최저가 전기’를 선호했지만 ‘100% 재생에너지를 쓴다’(홀츠마이어씨)거나 ‘절반은 그린에너지를 쓰는 친구가 있다’(와타라씨)는 답변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산 지 7년이 된 교민 홍모씨는 “비용이 나한테만 예외적으로 비싼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비싸기에 수긍하는 것 같다. 쓰는 만큼 나오려니 한다”고 했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화석 에너지원은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재생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쉽게 택할 수 있는 제도 아래 살면서 ‘결국 싫든 좋든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일깨우는지도 모른다.


글래스고(영국)·파리=박유빈 기자, 윤지로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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